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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나의 힘

비교 말고 비유로 가자

by 임트리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이런 말을 한다.

'그들을 묶는 끈은 우정이 아니라 성공이다.'

나의 친구들은 성공하지 않은 나를 우정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나는 성공을 욕망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그러면서 우정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성공하지 않은 친구인 것이 부끄러워 연락을 안하게 되었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에는 비영리 회사를 운영하는 47세의 브래드가 나온다. 브래드는 하버드 음대에 지원하는 아들과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실버카드와 할인항공권으로는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어 실패한 중년의 자기 모습을 끊임 없이 생각한다. 브래드는 잘 나가는 대학교 동창생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한다. 브래드가 가졌던 이상주의적 신념은 빛깔을 잃고 덧없이 밟히는 낙엽과도 같다는 걸 자각한다. 유명하고 돈이 많은 친구들의 성공에 빛바랜 얼굴로 아들을 챙기는 아빠, 브래드. 극적인 서사가 없어서 더 자극적으로 마음에 엉겨붙는 영화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뻔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시험에 붙고 떨어지고 하는 문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물 근성, 이기심, 뻔뻔함, 냉정함, 팩트인줄 알았지만 뒷말이 되어버린 것, 벤댕이 속알딱지처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일...


자신의 민낯은 언제나 스스로 뒷덜미를 낚아챈다. 외면할 수도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 자기혐오의 손아귀.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이 집회를 하면 넷플릭스의 워킹데드 시리즈 10편은 나올 것 같다.)


그런 주제에 자꾸만 잊어버린다. 욕심이 앞선다. 우쭐해한다. 이미 과분할 만큼 실제 능력 이상의 좋은 결과를 운좋게 얻은 주제에 별 노력 없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은 과대망상에 빠질 때가 많다. 보고 들은 건 많아서 눈 높이는 하늘 끝까지 가 있으니 문제다. 그러다가 조금만 벽에 부딪혀도, 조금만 안 좋은 뒷말을 들어도 마음이 상한다.


낙타와 펭귄은 다른 것이다. 누가 낙타가 더 좋고 펭귄이 더 나쁘다고 하지 않듯이 그 존재 자체로 고유하다. 누구는 고래가 희귀해서 좋고 누구는 멸치가 맛있어서 좋을 수 있다. 같은 어종이라도 각 개체가 끌리는 이유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사람끼리 모아놓고, 싫어하려고 다른 점을 찾고는 한다.

낙타가 게으르다고 해서 욕하지 않으면서, 생선이 발이 없다고 욕하지 않으면서 왜?


비교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대상끼리 얼마 만큼,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란 거 하나다. 세분화하면 한국인, 미국인, 남자, 여자, 단신, 장신, 회사원, 프리랜서 이렇게 나눌 수야 있지만.

비교를 하는 이유는 뭘까. 비교는 진화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우성과 열성을 따져서 우성만이 지구상에 살아남기 때문에 같은 종끼리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비교를 한다. 도태되기 싫은 까닭이다.

우리가 모두 도태될 이유가 없다.

지구에는 고양이도 필요하고 개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과의 차이에서 나에게 맞추려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

내 눈에 못 마땅한 것이 남의 눈에 못 마땅한 것은 아니므로. 내 눈을 바로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싶어지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비유 모드를 설정하자.

나는 낙타인데 쟤는 말이라서 등이 매끈하구나. 대신 내 다리가 더 길다 이런 말은 하지도 말자. 그냥 말은 말이고 낙타는 낙타일뿐이다.


마흔에 접어들때 쯤 그 어느 때보다 비교를 많이 했던 거 같다.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왜 말이 되지 않았을까. 방향조차 감이 안 잡히는 사막에서 낙타 신세를 면할 수 없다니. 낙타는 사막을 걸어서 도시로 와도 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월세집에서 서울 중심가의 1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무 위의 고독한 매는 수다스러운 원숭이 무리에서 살기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러니, 매인 주제에 원숭이를 비교삼아 내 처지를 한탄하지 말 것. 매의 눈으로 원숭이를 관찰하는 것만큼 꿀잼이 없으니까.



어느새 나는 비교를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서 나인 것, 내가 아닌 것, 내가 한 것, 내가 안 한 것. 비교는 불행을 낳는다고 한다. 비교하는 버릇을 없애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비교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갈 때조차도. 빨리 가려고 하는 비교가 아니라, 기준점이 모호할 때 얼만큼 왔나를 보려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옆의 존재를 봐야 한다. 내 위치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두가 틀렸다고 하더라도 도토리 키재기라 할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봐야만 한다. 사람이 그렇지 뭐, 비교는 결국 나의 힘이된다. 비유의 서사로 접어들기만 하면. 그 자극점에서 몸을 사리거나 주저앉지 말자.


한낱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면 아니 된다. 욕망은 욕구와 소망이 아닌, 욕으로 망하는 전차이다.

스스로를 욕하느라 망하지 말고 나를 보듬자. 보듬은 손가락 사이로 빛이 나오는 걸 나만 못 보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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