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세이/ 원스어폰어타임 인 방송가
16년 차 작가 L은 집을 나와 세 걸음만에 고민한다. 이대로 버스를 타면 5분 늦고, 택시를 타면 20분 먼저 도착할 것이다. 순간, 반대편에서 빈차에 점등이 된 택시를 보고 오른손을 내밀어 버린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커피점으로 걸어간다. 지난밤 모자란 잠은 보충할 수 없지만 카페인은 자유롭게 보충할 수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려다가, 문득 사무실에 출근했을 후배들을 생각한다. 애들 것까지 주문을 받을까 잠시 머뭇거리다 이따 점심 먹고 사지 뭐, 하며 맘을 돌린다. 사무실에 들어선다. 막내 혼자 나와 있다. 커피 주문을 안 받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출근길에 쪼는 선배가 됐겠지.
일찍 나온 막내가 홀로 샐러드를 먹다가 일어선다. 머리에 달린 큰 리본이 딱 봐도 무언가의 덕후인데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말투 때문에 일은 좀 어설퍼도 봐줄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언니도 샐러드 하나 드릴까요?”
안 하는 게 나은 멀건 인사보다 듣기 좋다.
요즘 다니고 있는 S방송국의 사내 식당에서는 바쁜 방송국 놈들을 위한 샐러드가 마련되어 있다. 거기서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했을 언니들을 위해 샐러드를 산더미처럼 챙겨 온 막내는 호감일 수밖에 없다. 작가들 사이에서 구내식당은 S사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 이른 아침에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L은 막내작가일 때 아침 7시에 출근해 잠깐 식당에서 뜨거운 누룽지 밥을 먹으려다가 선배가 사무실에 왔다는 전화에 막 받아온 식사를 그대로 반납하고 깍두기를 마저 씹으면서 부리나케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누룽지 대신 샐러드를 사무실에서 섭취할 수 있다. 아무래도 꼰대 같은 생각이지만 그때 나의 경우에 비하면 후배들의 출퇴근 조건은 한결 넉넉해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보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가 여유를 쓸 줄 아는 건 아니다. 출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시간이 뒤로 밀렸을 뿐이라서 일하러 오는 이들의 발걸음은 십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급하긴 마찬가지니까.
작가들의 사무실은 보통의 회사와 달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도록 배치되어 있다. 얼굴에 스치는 표정이나 안색에 관심만 가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조리 알아챌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포커페이스란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가. (사람들과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류는 방송작가가 아니라 문학 장르로 발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자리를 한번 맡으면 쉽게 옮길 일은 없다. 정리벽이 있는 작가들은 왕년에 독서실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해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에 파일함과 개인 용품을 비치한다. 그것들은 파티션처럼 서로의 영역에 경계를 만들어준다.
싫으나 좋으나 피할 길 없이 오고 가는 시답잖은 농담이며 격분에 찬 누군가의 타이핑 소리나 가정사와 애정사는 물론, 어제 먹은 야식메뉴까지 공유하며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을 계산하면 아마 각자의 가족이나 학창 시절 친구와 같이 보낸 시간보다 절대적으로 많을지 모른다. 그나마 책상 위에 웃음이 오고 가면 다행이나, 다들 딱히 웃고 싶진 않은데 웃으려고 노력하는 기운이 역력하다.
선배가 하는 한 마디에 리액션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치환되고, 진심으로 웃기지 않아서 안 웃었을 뿐인데 시바이(방송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일본 속어: 상황에 맞는 연기란 의미)를 모른다며 일방적으로 감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오락적 유대감을 빌미로 한 일종의 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선후배 간의 코드만 잘 맞으면(아마도 가장 하드코어인 부분) 이런 행위는 팀의 추진장치가 된다. 계속 적응이 안 된다면 반드시 개인 책상을 주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웃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회의가 시작됐다. 이들의 대화에는 종종 일본말들이 난무한다. 그나마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다.
“회의, 이제 하면 되겠어?”
메인 작가는 들락날락 20분째 프린트하고 있는 막내를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 그러자 L은 웃을락 말락 한 마디 던진다.
“16층 프린트를 다 고장 냈다는 얘기도 있고~”
“누가?”
“아, 시바이죠!”
“나 오늘 니마이다.”
그때 마침, 모 가수의 매니저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커피를 쏘겠다며 입맛대로 주문할 것을 주문한다. 동상이몽 중이던 작가진들은 이 순간만큼은 급히 하나가 되어 자리를 비운 선배 몫으로 평소 즐겨마시는 메뉴를 기억하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얼굴에 급히 화색이 띄우며,
“실장님, 최고다 최고! 기깍이를 너무 잘 맞춰 오셨네요!"
“사실 제가 타이밍 하나는 끝내줍니다! 그거 하나로 이 자리에 온 사람입니다, 제가!”
느닷없이 성공의 비결을 고백하고 사라진 매니저가 쏜 커피를 쪼르륵 마시면서 섭외 리스트를 보던 피디가 말한다.
“그런데 섭외 리스트를 보면 야마가 너무 없지 않아요? 섭외가 중요한데 말이야.”
“A는 어때요? 토크쇼에 나온 거 보니까 오도시를 알더라고요."
“B는 스케줄 본댔는데 드라마 들어간다고 니주 깐 거 보니까…”
얼마 전 A의 빼어난 예능감에 감동한 조연출의 말이 끝나자마자 평소 조급증 3기쯤 되어 보이던 작가가 섭외 불발을 예감하며 말을 흐린다. 그 와중에 구성안을 읽던 메인 작가가 흥분한다.
“오, 미다시 잘 뽑았네? 밤새 술 마셨다더니 구성도 괜찮은데?”
대본을 쓴 작가가 신나서 고백한다.
“히히, 술 마시니까 술술 나오던데요. 역시 전 음주 체질이었어요.”
“아휴, 이 싼마이!!”
당이 떨어질 때까지 열띤 회의를 하던 웃음 노동자들은 오늘도 어느 집 개 이름 같은 시바이를 치고, 길고 장황한 니주를 깔며, 기깎이를 맞춰 오도시를 칠 수 있는 신선한 야마를 찾고 있다. 일본어라면 쓰미마셍 밖에 알지 못했던 L은 한동안 지인들과 대화할 때마다 이 단어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대체할 만한 표현을 찾지 못해 급기야 각 단어의 용례를 알려주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건 ‘시바이’였다. 대부분 처음에는 욕으로 알아들어서 놀라곤 했다.
“시바이란, 예를 들면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돌변하며 웃긴 멘트를 칠 때가 있잖아. 다들 빵 터지게 만드는 위트, 펼쳐진 맥락을 이용해 한 차원 더 웃긴 지점으로 들어 올리는 장난질. 물론 꼬고 비트는 경우도 있어.” 처음이 어렵지 한번 설명을 들은 자들은 그다음부터 알아서 활용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다고 설명하지 않고 '시바이를 쳤다'라고 하면 일사천리니, 그 얼마나 경제적인 표현인지! 작가들은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방송사의 왜색 짙은 누룩의 말들은 하룻밤 사이에 태어나고 죽는 신조어 한 다스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래도 요즘은 사용이 덜 한 편이다.
미싱 돌리듯 쉴 새 없이 일하는 작가들에 의해 이 나라 방송의 성패가 정해진다. 그러나 판을 엎거나 차리거나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뒷짐을 지거나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피디들이다. 선택권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다. L은 수도권 내 모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지만 글 쓰는 게 좋아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두고두고 후회하며 산다, 판을 차릴 수 있는 피디가 되지 않은 것을.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오는 기회도 내치고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디는 갑이고 작가는 을이라고 누가 말했을 때 L은 기막혀하며 대꾸했다. "피디는 피디로서 갑이고, 나는 작가로서 갑이죠. 각자 주인의식 갖고 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었다. 음양이론처럼 갑과 을이 존재해야 일은 무리 없이 굴러가고 자신도 안전하다는 것을 L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피디가 작가들의 의견이 시원찮다는 듯이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을 때 광고국의 일 잘하기로 소문난 대리가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오늘 머리가 떡져 온 작가 옆에 앉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미모가 꼭 장녹수 같다. 몇몇은 속으로 매일 아침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오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협찬받기로 한 제품의 시안을 갖고 온 녹수는 광고주를 설득할 때 유효했을 비음을 내며 광고 조건과 단가를 일목요연하게 브리핑했다. 막내의 씩씩한 다나까 말투를 듣다가 열 살 정도 많은 녹수의 콧소리를 들으니 이질감이 들었다. 작가들이 그녀를 마음속에서 이미 비호감으로 정한 것은 결코 비음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오늘도 감지 못한 머리에, 아침에 날린 택시비에, 자꾸만 뻑 나는 노트북에, 아까부터 종이가 걸려서 빠지지 않는 프린터가 더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녹수는 꽤 똑똑한 여자다. 어디서 감추고 티를 내야 할지 아는 녹수는 메인 피디와 작가와 돈독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까지 노출되면 제가 5천만 원은 따올 수 있는 거, 아시졍? 그러니까 작가니임~ 잘 좀 써주세영?"
비음으로 일장요청을 마치며 들어올 때처럼 당당하게 퇴장한 녹수의 향수 냄새가 사무실에 흥건했다.
L은 협찬받기로 한 제품을 구성상 어느 부분에 껴 넣어야 가장 자연스러울까 생각해본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광고비 협찬까지 작가의 업무로 넘어와 있다. 어릴 때 보던 프로그램 말미에 꼬박 나오던 큰 패널의 한우세트나, 홍삼 교환권 정도의 노출이 아니다. 이제 광고주에게는 15초의 러닝타임 제약이 없는 유튜브와 기타 플랫폼이 있다. 무엇이든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방송국이 기차에 연예인을 '모시면', 광고주는 '모셔진' 연예인과 같은 칸에 브랜드를 태운다. 그들이 기차에서 내릴 때쯤엔 어마어마한 소비자들이 마중 나와 있다. 방송의 위력은 그렇게 대단하지만, 가난해진 방송국은 제안서까지 만들어 오랜 밀당 끝에 협찬으로 제작비를 보태는 추세다. 피디들은 본인들이 새하얀 조연출일 때 목격했던 예능 황금기를 그리워하며 씁쓸히 술을 마신다. 그리고 작가는 협찬받을 유산균 음료를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을 짜면서 샘플 하나를 까 마신다. 꼴깍.
"밥 먹고 하시죠!"
피디 K가 먼저 일어났다.
풀리지 않는 회의를 끊어주는 것은 방송국 국장도 사장도 아니고 밥이다. K는 밥도 안 먹여가며 작가들 일 시킨다는 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했다. 대박 프로를 만들지 못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밥은 언제 어디서고 제작진을 전지전능하게 보우하신다. 녹화장에서도 밥 안 먹이고 촬영하면 그 날로 그 피디는 뚝 떨어진 평판이며 인간이하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팀에 식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럴 때면 작가 중에서 가장 연차가 많은 작가가 작가들의 밥을 산다. 후배보다 높은 작가료를 받지만 매번 점심을 사 먹이다 보면 소득은 마이너스가 된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1인 식비가 높아졌으나 작가료는 그대로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어느 모임에서 환경이 지저분한 업계는 사수들이 식사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지만 회사는 그럴 일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때 L은 동의하면서도 ‘지저분하다’는 표현에 내심 기분이 좀 상했다. 졸지에 지저분한 데서 평생 살아가는 바퀴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며 동시에 직업적으로 한수 깔린 느낌이었다. 이 바닥의 생리가 향후 10년 내에 덜 지저분해질 가망도 안 보여서 더욱 씁쓸했다. 방송판이나 영화판이나 핑거 더티의 역할을 맡은 자들은, 차린 밥을 잘 먹고 그에 기생(파생)한 아이디어를 내고나서 사인하는 손가락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점심으로 나온 돈가스와 짜장밥 중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L은 식판을 반납하고 후배들에게 커피를 주문받는다.
"커피 또 마실 사람? 톡창에 올려!"
아아3, 뜨아2, 딸바2, 자에1. 총 8잔을 주문하고 찍은 쿠폰을 막내에게 킵해두거나 쓰라고 준다.
오후에 인터뷰 하나가 잡혔다. 예전에는 배차를 받아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경기가 좋지 않은 이후로 비용이 덜 발생하는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가끔씩 돈 이야기를 입에 담기 싫어서 사비로 업무비를 충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L은 후배들에게 택시 영수증은 반드시 챙기라고 말한다. 작가의 촉은 작가 후배들의 텅 비어 가는 통장에 관해 가장 정확하다. 대부분 좋아서 시작한 직업이지만 들쑥날쑥한 고용 불안에 내키지 않아도 덜컥 일을 잡았다가 몸과 마음이 병드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다. 워라밸은 그림의 떡으로 늘 화병을 달고 살았다. 이런 연유로 신입 막내 작가가 오면 걱정이 먼저 불쑥 들었다. 언니로서는 시작도 못하게 하고 싶다가도 선배로서는 막내 없이 안 되는 것이었다. 막내 작가 품절사태는 팀을 꾸릴 때마다 겪는 문제였다. 일 때문에는 힘들어도 사람 때문에는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L이었다.
연예인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왔다가 L의 긍정적인 리액션에 점점 편안해져 조금씩 마음을 터놓는다. 제작진과 출연자가 호감의 균형을 갖추면 이야기가 잘 풀린다. 작가란 출연자의 별 게 아닌 일도 마치 대단하고 은밀한 일인 것처럼 여겨주는 그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L은 생각해왔다. 작가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마인드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의 압박과 뒤에 서는 사람의 압박의 유형은 달라도 그 무게는 비슷하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반응이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물며 인기가 혈이자 산소인 연예인은 악플보다 무플이 괴로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무반응과 무관심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들. 그리고 카메라 뒤의 L은 그들에게서 대중이 반응할 만한 새로운 이슈를 건지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렇기에 연예인을 만나면 내장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려 중저음의 목소리를 하이톤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화석이 된다.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이유가 밖에서 친절 에너지를 모조리 소모하고 왔기 때문이란 걸 가족들은 알지 못한다. 진득하니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텔레비전 앞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행위는 작가가 되는 날 끝나버렸다.
방송콘텐츠의 실체가 궁금한 사람들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입이 근질근질한데 뭐부터 물어볼지 몰라서 엄한 질문부터 던진다. "그래서 네가 본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예뻐?", "그 찌라시 진짜야?", “개그맨 J가 착하다는데 진짜야?” 방송국에는 보통 이상의 예쁘고 못생긴 사람이 넘쳐나기에 순위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일 뿐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없다. 진짜인가 하면 가짜이고, 가짜인가 하면 진짜로 둔갑한다. 쇼가 달리 쇼가 아니라 그래서 쇼이다. 그것을 설명해주려면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엄한 대답을 한다. “나도 잘 몰라.”
시청자는 미끼를 문다. (인간적으로) 뭣이 중헌지는 안 중헌 문제이다. 제작진이 던진 미끼에 현혹되면 시청률은 크게 오르고, 프로그램은 대박이 나며, 광고는 물밀듯이 들어오고, 방송국은 신이 나며, 연예인의 몸값은 하룻밤만에 껑충 오른다. 거기서 실체와 형식은 거듭 몸을 섞고 부풀려져, 믿는 대로 보게 되는 마법이 시작된다. 천연원료 1%만 들어가도 천연화장품이라고 하듯, 진심이 1%라고 해서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마법을 일으키는 사람이 작가다. 이제 마법을 부리는 딸의 입을 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L의 아버지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뿐이다. "요즘 많이 힘드냐?”라는.
꿈과 환상의 세계 롯데월드에 입장하는 아이에게 굳이 로티와 로리 안에 알바생이 들어있다고 말하지 않듯,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는 시청자에게 사실은 카메라 꺼지면 출연자가 눈알이 뒤집혀 화를 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에 복귀하니 새로운 이슈가 생겨 있었다. 결국 옆 팀의 막내가 울면서 그만두고 나간 것이다. 배타는 예능이라 평소에도 생선 때문에 혼나는 일이 잦았다. 천장이 뚫린 파티션으로 분류해놓은 사무실은 옆 팀의 선배가 후배를 혼낼 때 말톤이 어떻게 변하는지, 막내가 찾은 자료가 돔때문인지 도다리 때문인지, 거기에는 선배가 알고자 했던 정보랄 게 단 한 줄도 들어있지 않았다 같은 정보가 의도치 않게 공유되었기 때문에 그 적나라한 긴장감이 이편까지 넘어오면 다들 숨을 죽였다. 숨죽인 L과 후배들은 그저 2차 세계대전에 대비했던 영국의 포스터 문구를 따랐다.
Keep calm and carry on.
대체로 숨죽여 말해야 하는 것은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이다. 남을 의식하거나 의식되게 하는 말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러나 작가들은 이런 것을 정보력 또는 자양강장제로 여기기에 나눠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져, 낮밤으로 새와 쥐가 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중간 연차의 작가가 알아온 이슈를 막내부터 메인까지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방송국 전체에 소문이 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L은 간절히 바랐다. 도망 간 작가가 부디 생선회나 생선구이를 못 먹게 되는 일이 없기를.
숨 돌릴 새 없는 하루였다. 아직 가편 시사가 남아 있었다.
L은 프리뷰 페이퍼 더미와 녹화 현장에서 메모했던 것을 가지고 시사실로 향했다. 시루에 들어찬 콩나물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째려보고 있다. 여기가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인지 예능팀인지… 뒤에서 보면 그 꼴이 좀 웃기다. 세상을 웃기기 위해 소집된 어벤저스들처럼 앉아있는 자들의 얼굴에는 정작 웃음기가 1도 없다. 저마다 미간과 이마에 삼지창으로 고랑을 파고 있다.
모두가 뜻밖의 정숙을 하고 있는 찰나, 네트를 겨우 넘은 배구공을 받아쳐 살려내는 듯한 편집점을 마주하는 순간 일제히 삼지창을 집어던지고 0.3초 정도 화기애애하게 빵 터졌다가 다시 손에 삼지창을 쥐고 심각해진다. 찍어온 화면을 아무리 째려봐야 소용없지만 그래도 몇 초 호흡을 더 주고, 버린 컷을 살려내고, 어떤 자막으로 보완하면 조금 더 재밌어 질지 머리에 열이 나도록 고민한다. 그러면 없던 것도 생기고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 믿음 덕에 짠, 초능력이 생기기도 한다.
컷 사이사이 정숙과 정색의 반복들. 그 과정에서 한 번씩 언성을 높인다. 속으로는 각자 부단히 저 인간 정말 감 없네, 하고 있을 때 최고 책임자인 본부장이 말한다.
“이렇게 하다간 큰 일 날 거야, 방송 빵꾸라고 빵꾸!”
그의 절대 예(능)감 앞에서야 비로소 다시 정숙 모드로. 시청률에 사달나서 안달복달하는, 말 그대로 ‘웃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인도의 구루 오쇼 라즈니쉬는 말했다. 웃음은 핵무기보다 강하다고. 그렇다면 이들은 핵무기 기술자보다 강한 걸 만드는 자들이다. 파레토의 법칙대로라면, 예능은 웃음 20을 위한 눈물 80의 비율을 가진다. 또 20프로만 쓸 알짜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80프로의 녹화분을 솎아 버리고, 20프로의 사람들이 고생하여 80프로의 사람들이 즐겁고, 20프로의 출세를 위하여 80프로가 피땀을 흘리며, 20프로의 작가만 버티고 80프로는 중간에 도태되는 강력한 세계.
L의 선배는 저녁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식당에 들른다.
“나 지금 가면 밥 해야 돼.”
배는 고프지만 저녁은 하기 싫은 워킹맘에게 구내식당은 좋은 대안이다. 비빔밥을 비비며 촬영 얘기를 하던 선배가 전화를 받았다. 회의 중에는 학원에 갔는지 확인 전화를 하더니, 지금은 학원 다녀왔다고 알리는 아이의 전화였다. 아직 일하는 중이라고 둘러댄 선배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계란 프라이의 노른 자를 젓가락으로 터트린다. 미혼의 L은 우동 그릇 안에 떠다니는 알갱이 튀김을 젓가락으로 잡으면서 흘러나오는 육아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다. 튀김이 잘 잡히지 않아서 숟가락으로 떠보는데 자꾸만 가장자리로 밀린다.
“너도 빨리 누구 만나야지. ”
L을 아끼는 선배의 진심은 식단에 상관없이 시종일관 배치되어 있는 깍두기와 김치 같다. 더 맛있어지지도 않고 맛 없어지지도 않는. 만나긴 만나겠지만 빨리 만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새삼 눈 깜짝할 사이에 식사하는 버릇은 이 식당에서 길러졌다는 게 생각났다. 잘 풀리지 않는 프로그램은 사건이 연쇄작용으로 일어나기에 겨우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거나, 밥 먹다 말고 받은 출연자의 펑크 소식에 그대로 일어나 달려 나갔던 일들도 있었다. 이제 위는 단련되어 체할 만큼 빨리 먹어도 탈 나지 않는 위가 되었다.
드디어 아침부터 몹시 그리워하던 집이다.
내일은 녹화날이다. 알람을 맞추고 L은 마침내 잠을 자려는데 어둠 속에 벨이 울린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여보세요?"
"매니저한테 전화가 왔어, 대본에 그 부분은 좀 빼 달라고."
"아, 내일 대기실에서 얘기하면 될 것을..."
"그니까. 빨리 고쳐서 다시 보내주고 자."
L은 노트북을 열어 질문 하나를 지우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다음 매니저의 이메일에 첨부하고 발송을 누른다. 그리고 베개에 머리를 대며 내 삶에 대해 짧고 굵게 생각한다.
'나야말로 웃기고 앉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