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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NIRVANA Sep 16. 2016

니르바나 라디오

# 코붕가 고양이를 만나다

                                                                                                                       

퇴근무렵인데도 지하철엔 생각보다 승객이 적었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열차의 흔들림이 심하다.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거의 매달리듯이. 

“오늘은 열차가 유난히 많이 흔들리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맑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분명 내게 거는 말이리라. 운동신경이 둔한 나로선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균형을 잡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나 보다. 
하지만 목소리에선 나를 비웃는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예기치 못한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사람은 없었다. 빨간 반바지에 파란색 자켓을 입은 얼룩 고양이 한 마리만이 갸웃거리며 날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핫! 놀라셨나요? 고양이가 말을 걸어서.” 

사실 놀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써 놀랄 기색을 할 수없지 않은가. 열차 안의 승객들도 그런 고양이의 반응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타인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 이 지하철이란 공간이 아닌가? 
치한이 여자들에게 추행을 해도, 어린 학생들이 부모님 연배 되는 사람에게 대들어도, 그저 자신과 상관이 없으면 전혀 다른 세상의 일 인양, 치부하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이 고양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놀라긴, UFO라든지 유령이라든지 세상엔 얼마든지 신비로운 일들이 많은데.” 

좀 어설픈 대답이지만 그래도 사실 아닌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고양이가 말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폭스 멀더는 아니지만 나름으로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의외로 교양이 있어 보였다. 
나의 반응이 그를 즐겁게 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왔다. 대개의 고양이가 그렇듯 걸음걸이도 기품 있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여기 열차 안의 사람들은 제가 말을 한다고 해도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워낙 무신경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조금은 다르신 분 같군요. 관심을 같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니, 하하하! 음, 그런데 균형 잡기가 힘드신가 봅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난 고양이의 지적을 쉽게 인정했다.

 

“응, 난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라,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아마 넘어져 버릴 거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양이가 우아한 동작으로 회전을 하며 

마치 무용가처럼 스텝을 밟았다. 


“아~ 네. 어때요, 선생님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저를 따라 해보세요. 이 춤은 코붕가 춤이라는 겁니다. 이 춤을 배우면 이 정도의 흔들림에서도 균형 잡기란 식은 죽 먹기랍니다. 자! 따라 해보세요. 이렇게~ 하나 둘, 하나 둘!” 


                                                                                                                   

고양이는 내게 춤을 권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금씩 어색하게나마 그 동작을 따라했다, 코붕가 춤을 따라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열차의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유쾌해졌다. 
고양이와 나는 그렇게 열차 안을 돌아다니며 코붕가 춤을 추었다. 
당연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열차의 승객들은 여전히 우리의 존재를 무시했다. 
지하철이란 의례 그런 곳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이 고양이처럼 뜻하지 않는 친절을 만나기도 하는 곳이다. 
우리는 목적지까지 코붕가 춤을 추며 갔다.
 주변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 참견하지 않았다. 스스로 지극히 상식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여길 테니까. 말을 거는 순간, 그 기준이 깨질 테니까. 
정말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코붕가 춤을 추는 고양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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