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겨울이었다. 삼촌에게 쓰다 남은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건네받았을 때, 나는 그것이 세상을 한 조각씩 오려내는 가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 처음 가져본 ‘소중한 내 것’이라는 무게감에 취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뷰파인더에 눈을 맞추기도 전에 셔터를 눌러버렸다. 며칠 뒤 인화된 사진 속에는 초점도 맞지 않은 뭉툭하고 못생긴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생애 첫 번째 포착치고는 꽤나 형편없었지만,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철저한 의도가 되었다.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천장의 누런 얼룩, 칫솔 끝에 얹힌 치약의 그 끈적하고 인공적인 냄새, 어머니가 깎아 놓아 금세 가장자리부터 말라가던 사과 조각 같은 것들. 그런 시시한 것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받아 적거나 찍어두지 않으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엉망으로 뒤섞여버려 결국 나라는 존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었다.
일기장 첫 페이지에는 꼬맹이 특유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선언문 같은 것을 적어두었다. 나의 모든 것을 여기에 담겠다—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그 문장은 일종의 생존 수칙에 가까웠다. 나는 정말로 성실하게 내 삶을 담아냈다. 오늘 점심의 김치찌개가 너무 짜서 물을 세 번이나 들이켰다는 시시한 기록부터, 짝꿍이 내 책상 영토를 5cm나 침범했으나 맥주사탕 한 개를 받는 조건으로 인도적인 아량을 베풀어주었다는 원만한 합의의 역사까지 빠짐없이 기록했으니까. 그때의 나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내 세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교복을 입고, 다시 그 교복을 벗어던질 무렵부터 세상은 아주 평범하게 지루해졌다. 사진은 가끔 찍었지만 딱히 인화할 곳은 없었다. 파일들은 하드디스크 속 ‘새 폴더(4)’ 안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데이터 덩어리로 무심하게 쌓여만 갔고, 일기장 첫 줄에 ‘날씨: 맑음’이라고 적고 나면 더는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 먹은 제육 도시락과 오늘 먹은 참치마요 삼각김밥 사이에서 어떤 서사적인 균열을 발견해 낼 수 있었을까. 겨울 코트 주머니의 환불 기한이 지난 영수증들처럼, 일상은 아무런 자극 없이 내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는 건 달력의 숫자뿐이었고, 기록할 이유를 찾지 못한 삶은 그냥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인가,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손목시계에 새 전지를 끼워 넣은 것처럼 다시 무언가를 남기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의명분은 없었다. 그냥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이름 모를 사내의 구겨진 외투 자락이라든지, 신호등 앞에서 휴대폰을 보며 입술을 가만히 달싹이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같은 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비 온 뒤 올라오는 특유의 아스팔트 비린내는 사진에 담기지 않아서, 아쉬운 대로 물웅덩이에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이라도 찍어 두는 식이었다. 일기라고 하기엔 민망한 메모들도 조금씩 쌓였다. “우리 명함에 직함 대신 ‘무화과를 좋아함’ 혹은 ‘비 오는 날엔 90년대 음악을 들음’ 같은 문장이 적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종류의 것들. 그런 쓸데없는 문장을 적고 있으면, 생각의 속도를 앞질러 종이 위를 구르는 볼펜의 감촉이 제법 상쾌했다.
가끔 그렇게 쌓인 사진과 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묘한 위화감이 든다. ‘내가 찍은 사진이 맞는가’ 혹은 ‘내가 적은 문장이 맞는가’ 하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들. 내가 쓴 글인데도 꼭 남이 몰래 적어둔 것을 훔쳐보는 것처럼 생경한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선명한 모양이 없는, 흐물흐물한 젤리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조차 매일 아침 새로 확인해야 하는 걸지도.
그래서일까. 나는 멈추지 않고 기록한다. 렌즈 너머로 무언가를 응시할 때,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전해지는 그 딱딱한 저항감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겨우 실감 나기 때문에. 펜 끝이 종이의 결을 긁어 내려갈 때,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마침내 지면과 마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기록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온 세상이 제 것인 줄 알고 셔터를 눌러대던, 그 겨울의 여덟 살 꼬맹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