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 / 처음 가는 마을
곧 있으면 기차가 떠날 참이라
삐걱이는 문을 열고 술집을 나서니
밖은
폴폴 날리는 눈
보상 없는 얼마간의 사랑을 제대로 받을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숱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한 녀석도 있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기억 없이 당당히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이자카야에서> 부분
천천히 읽는 시집이다.
하루에 많이 읽어도 한두 개의 시만을 담는다.
그 시에 함께 있는 '여백'도.
일본인이 쓴 시는 암만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책장 한 켠에 고이 모셔만 두곤 했다.
내가 이리도 지독한 오만과 편견을 지닌 사람이었다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봄날의 책> 세계시인선 판형은, 각 시인들마다 느낌이 모두 다르다.
하얀 표지에 글자들은 각 작가들의 느낌만큼이나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책의 안에는 고유의 언어로 쓰인 시와 한글로 번역된 시가 함께 존재한다.
외국어를 할 수는 없어도 자꾸 옆으로 흘깃흘깃 쳐다보며 시를 읽어나가며 그 특유의 띄어쓰기를 온전히 느낀다.
조금 더 시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으로.
지금 이 계절, 이 온도가 느껴지는 날들에 자꾸 <처음 가는 마을> 시집을 들추어본다.
좋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