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 존 버거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161p
내가 책을 펼쳐 들기 시작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순간 이미 내가 속한 현실의 시간은 잠시 잊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을 무수히 많은 생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의 생이 괴로움으로 가득하거나 행복함 혹은 무심함으로 가득 차면 차는 대로 나에게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표정이 내내 변하는 것 같다며 말하는 건 그런 이유겠지.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 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16p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아두어서 다른 페이지를 살펴보다가 다시 돌아와서 읽어보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다. 선을 긋는다는 것과 삶을 존중한다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 것일까.
누군가의 삶 속에 내가 조금 더 존재감이 생긴다는 것, 그들의 삶이 또 나에게로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선을 긋지 못하게 되고, 어쩌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삶을 침투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솔직하게는 침투당하고 싶으면서 또 마음 한 구석에서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어리숙한 마음이라니.
그래서 이 문장대로 쉽게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 같으니 쉽지가 않다.
'어느 정도'의 '적정' 선을 알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일지도 모르겠으니.
언제나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감각이 합해져 한 사람의 태도를 만들고 언어를 탄생시키니까. 누군가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건 실력이 아니고 태도의 말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체험하고 있다. "말 안 해도 알지?", "내 진심 알잖아"라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른다. 태도로 읽을 뿐이다. 존중받고 싶어서 나는 태도를 바꾸고, 존중하고 싶어서 그들의 태도를 읽는다. 문제는 존중이니까.
<태도의 말들> 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