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의 가장자리에서 / 파커J.파머
자신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려면, 삶의 여러 사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했는지를 진정으로 소유하면 (...) 현실을 치열하게 대하게 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237p
온전함은 목적이다. 하지만 온전함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필수 요소로서 부서짐의 수용을 의미한다.(...)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진정한 자아로,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식으로 여기에 존재했으며, 현실에 치열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있을까.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240p
책의 거의 처음에서 언급된 내용은 마지막에 가서 또 한 번 더 언급되고야 만다.
그만큼이나 파커 J. 파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고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며.
동시에 나를 잡고 놔주지 않는 문장들이 되었다.
나를 스스로의 모습 자체로 바라보고 인정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나를 향한 칭찬마저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낯부끄럽고, 나 스스로도 쉽게 긍정할 수가 없지 않았는가 돌이켜본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내가 원하는 행위를 하는 데 더 요란스럽게 나를 잡아두려 한다.
그저 쓰는 행위를 위해서는 노트와 펜이 있으면 될 뿐인데
어떤 구성들, 종이가 어떤 브랜드인지. 그런 것은 왜 자꾸 나를 현혹시키는지.
나의 내면보다 드러내 보이는 것이 더 앞섰던 것은 아니었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인데
그것을 둘러싼 것에 더 눈길을 돌리니, 금방 나의 행위는 빛을 잃어버리고 길을 헤매고 만다.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지만
떠오르는 순간이 많지 않다. 삶의 많은 사건들을 그저 스쳐가기만 하려 했을 뿐이었다.
멈추고 사색하는 순간보다도 말이다.
나의 모습은 두 가지 무대에서 보이곤 한다.
On-line 과 Off-line
이 글을 쓰는 공간 역시 On-line이지만 최대한 나의 속내를 과감하게 드러내 보일 곳이라고 말해본다.
내가 가장 잘 숨을 수 있고, 또 가장 빨리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니,
나의 솔직함과 나의 가장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라 말할 수도.
그리고 결국에는 내 솔직한 속내가 모든 것의 시작이 되고 나서야 온라인에 살짝 비치는 모습을 안심하고 바라보게 된다.
이대로도 사실, 괜찮지 않냐며 여러 번 반문해 온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이 지나면 꼭 몸이 아파왔고 예민함이 가져 온 결과라며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했다.
서른 중반이 지나고서야 나 스스로의 모습을 그동안 지켜봐주지 못하여 미안함의 감정으로,
애처로이 바라보게 된다. 나의 온전한 마음들도 괜찮지 않냐며.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내 본 모습마저
어떠한 색깔도 빼고도 바라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온전함을 위한 완전함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말이다.
그러면 예민한 감정도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