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p 그때는 저 책에 빠져든 걸 얼마나 후회했어? 하지만 어느새 내 몸은 탁자 위로 올라가 앞발로 책 무더기를 밀고 있었어. 책이 와르르 떨어졌지. 그 소리에 잠깐 움찔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 나는 바닥으로 내려왔어. 나는 바닥으로 내려왔어. <보물섬>이 눈앞에 있었지. 나는 32장부터 찾아 넘겼지만 그러고도 갈등했어. '안돼. 읽기 시작하면 또 정신을 못 차릴 거잖아? 위험해! 아냐. 그냥 조금만 읽고 두 자.' 엄마가 잘하는 말도 떠올랐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지. 하지만 호기심이 없는 건 고양이라고 할 수 없으니 어쩌겠니?"
이미 내 눈은 이야기를 읽고 있었어. 처음엔 바깥 동정에 계속 귀를 기울이며 읽어 나갔지. 하지만 바깥소리는 곧 들리지 않게 되었어.
185p 선장이 마루에 나왔을 때, 나는 앞발을 들어 책장에 꽂힌 <작별 인사>라는 책을 가리켰지. 선장은 별생각 없이 책을 빼 주고 자러 갔어. 그 책은 다 읽은 책이지만 제목 때문에 빼 달랬지. 나는 그 책을 현관 앞에 밀어 두었어. 적어도 선장은 내 말을 알아듣겠지.
책을 읽는 고양이라니, 매력적이지 않니? 꽁치를 앞에 두고도 고양이는 책 속의 글자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어. 꽁치라는 이름을 가진 이 까만 고양이는 조그만 섬에서 태어났지. 도도하고 현명한 엄마 고양이 품에서 동생들이 있는 첫째 고양이로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일이 일어나.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엄마가 그랬고, 엄마의 할아버지가 그랬고. 이제는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로 태어난 거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글을 읽는 것에 푹 빠져버리게 된 거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서워도 마치 글을 읽는 것이 자신의 본능이라는 것처럼 글을 읽기 위해 움직이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운명처럼 글이 가득 담긴 책을 만나게 되고 책들을 읽느라 심지어 바깥소리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해. 위험에 처한 순간도 만나지만 모든 사람들과 동물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처럼 도움을 받고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해. 그럼에도 책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아. 오히려 '기꺼이' 책 속 이야기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지.
아마 이 책을 읽고 이런 걸 물을지 모르겠어. 여기에 나온 책이 실제로 있는 책이냐고 말이야. 모두 실제로 있는 책이고 심지어 정말 재밌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이미 서꽁치가 재밌다며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어.
책을 읽는다는 건 말이지, 참 온몸이 피곤해지는 일이기도 해. 눈은 건조해지고 허리와 목은 뻐근해져서 꼭 몸을 한 번씩은 쭉 펴줘야 되지. 거기다가 읽고 나서 책 내용이 오래 머무르면 좋을 텐데 신나는 일들을 만나면 책 이야기는 금방 사라져버리곤 해. 그래도 말이지, 언젠가 읽었던 책 이야기가 우리에겐 다정하게 말을 건네오는 순간이 있을 거란 말이지. 그 순간은 모두 다르게 만나게 될 거야. 이미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훨씬 이후에 만나게 될지도 몰라. 책을 읽는다고 우리가 원하는 꿈이 이뤄지는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 꿈을 향해가는 순간에 다정한 벗처럼 오래 남아있게 될 거라고 말하고 싶어.
서꽁치는 그렇게 무서우면서, 왜 다시 항구로 나갔을까?
들킬까 봐 두려움을 안고서도 왜 책에 푹 빠져 들어갔을까?
아늑함을 박차고 나와서 다시 찾아간 곳은 왜 서점이었을까?
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음을 전하게 되었을까?
때로는 과학적인 이론, 그럴듯한 설명으로는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해. 이렇게 분명히 이성적인 세상에서 살면서 말이지. 그래도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