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변화 같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 이것 역시 기록할 가치가 있다.
아이들의 책상 끝으로 원목 책상을 추가하였다. 늘 아이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수업을 하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볼펜, 샤프, 글씨 등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선생의 마음에서는 아이들의 공간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4인 책상이지만 실제로는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수업이 진행되면 어느새 2명의 책과 노트로도 가득 차 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공간이 부족해지는 그때는 내가 일어서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마음먹고 개인 책상을 두었다.
책상은 의외로 공간이 넉넉해서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할 때도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거기다가 숨겨진 서랍까지 있으니, 내 지인은 '브론테 자매' 책상이냐고 웃었다. 그대로 내 책상에 이름 붙여주고 싶다.
아이들은 어려운 책이면 괜한 투정도 부리지만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내려 하는 아이들의 '열심'이 보인다.
결과로 보여야 하는 많은 수업들보다 아이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더 보게 되는 독서 논술 수업이다. 그리고 독서감상문을 써 오게 하면서 역시 꼭 필요한 글쓰기 연습이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한두 줄을 겨우 써왔다. 하지만 점점 글쓰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특별한 생각을 담아서 써오기 시작한다. 과학적인 분야를 만나 신나게 적어 온 아이를 보면서 '네가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하면서 읽었구나.'하며 공감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신이 생각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는 것이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바라는 부분이다. 이런 선생의 요구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싫어도 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노력의 흔적을 가져오면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글쓰기가 쉬워지는 순간을 만나면 그것은 아주 큰 행운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글에 대해 수십 번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어른인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다. 나와 만날 때 그것을 느끼면 좋겠지만, 시간이 아주 흘러버린 후에 안다고 해도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 아이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들의 성장을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