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저 불빛들을 기억해>
개인주의를 누구든 품고 살고 있으면서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여질 때에는 우연히 일어난 사고를 못 본 체하지 않고 바로 몸을 달려 도우러 가는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더욱 개인의 세상에 살기를 자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사실 홀로 카페에 갈 때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않게 되었거든요. 사람이 좋아서 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서도 만나기 힘들었던 강제의 시기를 지나니 그것은 어느새 우리 몸에도 새겨진 것인지 홀로 있음도 편안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리고 많은 사고들이나 다른 사람의 불행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럴 때에는 삶에의 사랑, 다른 사람들에의 애정이 이전보다 흐려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죠. '사랑은 감상도 나약함도 아니'라고 말하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우리가 '애정'을 갖는 존재를 향한 맹목적인 것을 떠나 참고 견뎌냄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강 저편에서 하나둘 켜지는 불빛들이 거기 누군가 살고 있음을 전한다'라고 말하며 상처 입은 날에도 늘 아련하게 살아 있었던 온기에 기댄 순간을 나희덕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 '불빛'은 어떤 불빛을 말하는 건지 책의 제목을 보며 계속 궁금해했어요. 작가는 자신의 존재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존재성을 '점'이라는 단어 안에 함께 두며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이 지금 자신의 작가로 사는 삶에 의식 저 멀리 새겨져있는 것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요.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시선들의 이야기는 점이 모여 '선'이 이루어지듯 그다음 '선'이라는 제목 아래에 모여 있어요. 불빛은 병원의 불빛들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차가운 소독 냄새가 온몸에 밸까 봐 걱정되는 것보다 그 무거운 공기의 무게를 떨쳐내기 힘들까 봐 병원에 갈 때마다 저는 얼른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다른 이의 불행에 빗대어 나의 다행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낯이 뜨거울 만큼 부끄러웠죠. 말로 하기 힘든 그 감정을, 여기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들의 곁에서 벗어나 병원을 가끔 드나들 정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꺼지지 않는 병실들의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고요. 나에서 사람으로, 사람과 사람이 모인 사회로 이어지는 것으로 마지막은 '면'이라는 제목 아래에 사회에서 봐 온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거리감, 연민과 반성, 깨달음들이 솔직한 그녀만의 목소리로 종이에 새겨져 있습니다.
책을 덮고도 여전히 기억나는 한 부분은, 폭설이 내린 때에 고속버스를 탔을 때 작가의 경험이었어요. 폭설에 오도 가도 못한 시간에 다른 버스에 타고 있던 이들이 함께 버스에 오르게 되었죠. 그리고 바로 구조하기 힘든 상황이니, 구조대가 먹을거리라도 주었을 때 그걸 먹은 저자의 말이 진리였던 거죠.
구호대가 건빵 한 봉지와 생수 한 병씩을 나누어 주고 갔다. '추억의 건빵'이라고 쓰여 있는 누런 봉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그 '생존의 건빵'을 몇 개 씹어삼켰다. 목이 메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빈속을 달래기에 건빵은 너무 퍽퍽했고 물은 너무 차가웠다. 175그램의 건빵 속에 5그램의 별사탕이 들어 있었다. 퍽퍽한 인생에 있어서 달콤한 순간의 비율도 그쯤 될까. 나는 별사탕이 들어 있는 작은 비닐봉지를 뜯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것이 마치 이 상황을 잊게 해줄 무슨 알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희덕 <저 불빛들을 기억해> 261p
어쩌면 우리들도,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기도 하고 조금은 느슨하게 쉬어가기도 하는 것도 역시 살기 위해서겠죠. 그래도 달콤함은 잊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쓴 아메리카노 대신 달달한 카페라테를 마시기도 하는 우리인 거죠. 달콤한 순간이 오래가지 않더라도, 쓴 인생의 끝에 또 달달함을 하나씩 맛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죠.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불빛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달콤한 별사탕을 맛보는 순간도 기다리며 우리의 나날을 보내면 어떨까요?
2026.03.28
오늘은 따뜻해진 날씨에 목련이 개화한 모습을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