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은 빗방울이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만으로도 마음은 금방 센티멘털해지곤 하지.
많은 이별 가사처럼, 혹은 시나 연애사에서처럼 비 오는 날 슬픈 이별을 한 기억이 없었던 나에겐
걸을 때마다 땅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바지나 구두에 젖는 걸 체념하고 바라보는 것이 기억해낼 수 있는 최선의 기억일 뿐이었는데.
(혹은 여름날엔 맨살에 물이 튀어 올라오는 걸 하염없이 허락하는 것밖에)
날이 갈수록 빗방울과 사물의 화음이 듣기 좋아지니 참으로 이상도 하다.
아이가 아가였을 때는 비 오는 날이 그렇게나 싫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한다고 해도,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신도시 아파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딜 나가든지 간에 빗방울은 꼭 내 옷을 적실 것을 알았다. 거기다 내 품엔 탯줄로 이어져있었고 나만 바라보는 어린 아가가 있지 않은가. 더욱더 집 안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집 안에 갇힌 신세가 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창밖에 내리는 빗방울이 그려내는 수채화는 또 얼마나 예쁜지.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는 그렇게나 예뻐 보인다.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실 비가 오면 무조건 우산을 들고 걸으려 하는 아이를 말리고 싶은 마음 그냥 두고 싶은 마음, 반반의 마음이 되어서는 어떤 날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집을 나선다. 장화를 신는 순간부터 아이의 눈빛은 바뀌고 마니, 이것 참 큰일 났지. 겨우 3분 거리인데 10분은 걸리겠다 싶으니. 행여 아이가 우산을 놓칠세라 바로 뒤에 따라가는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우산을 돌려가며, 제대로 균형 잡지 못한 우산이 흔들리자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굴에 닿으니 까르륵 신이 났다. 나도 가만 바라보다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만다. 아이의 장화 신은 뽀얀 다리를 사진으로 담아 보기도 하고, 우산을 든 모습을 담아보기도 하고. 조마조마한 내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렸다.
그때가 시작이었는지 몰라도, 비가 오면 우산부터 꺼내 찾고, 아이와 나서는 길이 조금의 초조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이는 비가 오는 날은 꼭 물웅덩이를 찾아가지. 청벌거리며 보이는 발아래 물들의 모습과 소리가 그리도 재밌나 보다. 조금의 힘을 빼는 것에서 평화가 오는 것이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비, 그것도 봄비가 내렸는데 우리는 빗소리만 듣고, 창문에 맺힌 빗방울, 난간에 맺힌 빗방울의 흔들거리며 매달려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오늘은 그렇게 토닥토닥.
오늘 딸이 그린 무지개.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로 우리는 그리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다른 색깔도 함께 들어갔다.
그래서 좋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을 그렸네.
먹구름과 번개, 흐린 날의 땅까지.
연필을 깎아 주니 스케치를 하지 않던 아이가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물감으로 바로 칠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그리는 모습을 보이네.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거침없는 아이의 손놀림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으로도 좋았네.
비가 와서 어두웠던 날의 한 가지 시선. 시간.
그래서 좋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