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올봄에 들어서서 읽었던 책 혹은 읽다가 만 책들을 다시 꺼내들게 됩니다.
필요에 의한 선택이 아닌 '손'이 더듬거리며 선택하고 (혹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네요) 집어 든 책들을 읽으면
다시 또 그 책과 연애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귀접기도 하지 않고 연필로 줄을 긋지도 않은 부분인데 이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러 있습니다.
길가에 토끼풀 꽃이 희점점하다. 엮어서 작은 화관을 만들었다. 나린은 숲에서도 오카리나를 불었다. 산책객들이 소리가 좋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오카리나가 숲에 잘 어울리는 소리라는 것을 우리는 느꼈다. 나린이 오카리나를 불자 새들이 노래했다. 멈추자 새도 멈추었다. 오카리나는 새를 닮은 악기이다.
허은실 <내일 쓰는 일기>
읽을 당시에, 그저 제주도 살이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허은실 시인님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글 자체에 아예 빠져버렸었죠.
제주도에 대한 로망.
이젠 예전 제주도가 아니라는 말. 타지인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섬의 사람들. 쉽지 않아 더 이상.
이런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었지만 여전히 내가 가고 싶어 하게 하는 것 :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는 것이 외로움을 잘 타는 내게 최고의 유혹
그리고 높은 담보다 탁 트인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정원에의 소망.
많은 사람들의 제주도 살이 이야기들에 자주 이끌리곤 합니다. 그들의 삶은, 타향 살이의 외로움과 고독함, 쉽지 않은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런 불만스러운 이야기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쁜 곳에서 지내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제주살이가 아닌, 한 여자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기들입니다.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제주도의 모습들이 보이지만, 그것보다 허은실 시인님과 딸의 모습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 좋았네요.
요즘은 이렇게, 책장에 꽂힌 책을.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눈으로 더듬어봅니다.
또 한 장 두 장 넘겨보고 싶은 유혹에 휩싸이면서 말입니다.
다시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전투적인 독서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뒤돌아 간다는 것.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바쁘고,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뒤돌아 간다는 것이 무모해 보여도 이미 이렇게 해보니 너무 좋은 걸 알아버렸습니다.
새로운 책도 많이 읽어야겠지요. 그런데, 저는 가끔이라도 이렇게 읽었던 책을 또 펼쳐들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펼쳐든 책이 처음 읽을 당시의 그 시간과 장소로 데려가 주기도 하네요.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좋아하는 이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던 그 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