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답답해지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과거로의 회귀 본능이 생긴다.
그 과거로의 회귀 본능은, 지난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이겠고 그 기억들은 늘 똑같은 기억들이 반복되곤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런 것이 내 최초의 기억들이다. 하지만 물론 이 기억들은 내 인생의 기록으로서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중요할 수 있고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사람은 예외적인 것만 기억한다. 어떤 것은 예외적이고 다른 것은 예외적이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현재 기억하는 것보다 더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을 수많은 일은 왜 잊혔을까?"
-버지니아 울프 / 지난날의 스케치
나의 첫 기억은 언제쯤일까. 한참을 생각해보아도 예전 어린 시절 사진에 있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던 엄마의 목소리는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4살 때쯤이었다며 말하는 사진 속 어린 꼬마는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대야 앞에서 수도꼭지를 만지며 카메라를 쳐다보거나 물을 쳐다보는 사진. 물놀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며, 한참을 물을 갖고 놀았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아이가 물놀이에 빠진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랬었지, 엄마? 그랬었다며." 하고 눈은 아이를 바라보고 귀와 입은 전화기를 향해 말해보는 것이 다인 걸.
또 한 사진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두 꼬마 아가씨의 사진. 어깨 정도까지 오는 까만 머리카락의 일부분을 머리끈으로 묶고 보조개가 잔뜩 생길 정도로 웃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는 7~8살 남짓의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의 다리에 꼭 붙어 있는 조그만 꼬마 여자아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물이 무서운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고, 그런 꼬마 여자아이가 그저 귀여워 죽겠는 조금 더 큰 여자아이의 표정이 대조적인데 그 모습만으로도 정말 어느 아역모델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두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7~8살 남짓의 여자아이는 바로 나의 언니. 언니와 엄마는 내가 모르는 기억을 너무나 행복하게 이야기한다. 그 순간만큼은 오래전으로 돌아간 듯이 연신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지금도 그렇게나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내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지어오던 웃음을 엄마도, 아빠도 똑같이 지어왔으리라.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나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듣는 것이, 내가 어떤 모습으로 혼이 났었고 어떤 시기를 지나왔었다고 해도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분위기에서 내가 완전히 사랑을 받기도 한 존재였음이 확인되곤 해서. 그래서 사실 그것만으로도 내가 기억 못하는 나의 모습 이야기하는 것도 기분 좋아지는 일.
내가 기억하는 많은 이야기들과 잊혀진 이야기 사이에서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시시때때로 떠오를 때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어떻게 토해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이와 있을 때는 마치 포커페이스처럼, 엄마의 감정도 아이가 고스란히 느낀다는 수많은 육아서에서처럼 그대로 행동하려 노력했던 순간도 있었고. 지금은 '힘들면 힘들다, 엄마의 감정은 사실 지금 행복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계속 안아주고 싶다. '라며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 감정을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때때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 아이에게 남는 기억들이 어떤 것일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완벽한 유토피아가 없는 것처럼 완벽히 좋은 기억들로만 채워질 순 없겠지만 그래도 괴로움의 기억은 조금만 가져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지 생각해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겠지.
그리고 나의 기억들도 너무나 자주 휘발되곤 해서, 내가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마는 것은 역시 노트와 연필.
그래. 괴로우면 괴롭다고, 울적하면 울적하다고 털어놓는 곳이 한구석은 있으니 다행이지.
**다음 발행은 "내 마음을 계속 간지럽히는 책"( 사각거림 매거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