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우유 Feb 23. 2021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네 친구도 믿었기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들에게

온라인 글쓰기 모임 〈분노의 글쓰기 클럽〉을 마치며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네 친구도 믿었기에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네 친구도 믿었기에

 근무하다 말고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어느 브런치 글을 클릭하게 됐다. 《공채형 인간》? 8년 전 대졸 신입사원 공채로 회사에 들어간 나의 구미가 쉽게 당겼다. 게다가 글쓴이의 구독자 수는 삼천여 명이 넘었다. 뭔가 대단한 글이 있을 것 같았다. 첫 글을 하나 읽었다. 재밌는데? 지루한 근무 중 잠깐의 환기가 필요했기에 그의 글을 연이어 읽기로 했다. 하나 더, 그러고 또 하나 더.


 글은 이상하고 치밀한 면이 있어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에세이라면 더 심하게) 그 사람이 알 것 같아지게 한다. 브런치에 올라온 그의 글을 다 읽고 확신했다.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구나. 대부분 징글징글한 자기 연민을 먹잇감 삼아 써낸 나의 글에 비해 정돈된 감정과 예리한 감각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비공개인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앞에서 조금 오래 머뭇거렸지만 나는 이내 팔로우를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의 요청을 받아주었다. 묘하게 뿌듯했다.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날 네 친구에게 소개 시켜줬고

 비공개 계정의 포스팅 숫자가 올라가지를 않아 휴면 계정화 된 건 아닐까 우려했던 것은 심각하고 웃긴 기우였다. 그는 포스팅은 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하루에 열두 개도 더 올릴 수 있는 헤비 인스타그래머였다.

 아이돌과 K-pop을 좋아하는 그는 이따금씩 나는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을 올린다거나, 읽어도 모를 것 같은 어려운 글을 추천하기도 하며 그사이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의 정체를 비추기도 했다. 내가 좋아했던 글들을 쓴 사람이 하는 글쓰기 모임에 멤버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 참여할 수 없는지 DM으로 물어봤다. 그는 정중히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문 따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모임도 아니니 이쯤이면 포기해야겠다 생각했다.


 포기를 받아들이고 나서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는 ‘분노의 글쓰기 클럽’(이하 ‘분노클’)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진행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보자마자 DM을 보냈다. 일빠로 신청할 테니 무조건 하게 해달라고, 있는 주접 없는 주접 다 떨었더니 속이 조금 후련했다.


 분노클은 2020년을 관통한 우리 모두에게 적합한 비대면 글쓰기 모임이었다. 모두가 따라야 하는 그라운드 룰도 있었다. 이를테면 외모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기, 나이나 신상에 대한 모든 정보는 본인이 오픈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물어보려 들지 않기 같은 것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모임이었음에도 세심하고 꼼꼼한 룰이었다. 모임 시작 전부터 그라운드 룰을 몇 번이고 읽으며 모임 리더의 준비성과 노력에 감탄했다. 이런 것을 마련하고 시작하는 모임이 망할 리 없었다.




 그런 만남이 있은 후로부터 우리는 자주 함께 만나며

 5주간의 모임은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얼떨떨하게 시작했다. Zoom을 처음 깔아봤다. 태블릿에 나오는 나의 얼굴이 어색했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둘씩 화면에 뜰 때마다 약간 숨고 싶어졌다.

 첫날, 모임에 임하는 리더의 자기 어필 뒤에 우리의 가장 슬픈 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에겐 꼭꼭 숨겨놓고 우리 엄마랑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딱 한 명에게만 알려준 슬픈 날이 있었다. 그날을 얘기해도 되나 싶었다. 그날은 너무 슬픈 날이었으므로. 너무 슬퍼 숨기고 싶어지는 슬픔도 있으니까. 그날 말고 적당히 괴롭고 슬펐던 다른 날을 얘기할까, 잠시 주춤했지만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는 날들은 그날보다 압도적으로 덜 슬퍼서 어딘가 도망치는 느낌이 들었다. 말해야겠다. 말하지 뭐. 이 사람들도 나처럼 리더를 믿고 이 모임에 합류한 사람들이 아닌가. 리더는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이 되어서 기쁘다’고 했었다. 나쁜 사람들일 리 없었다.

  그날 나는 울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어디서도 말 못 했던 내 슬픈 날을 세밀하게 들췄다. 눈물은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노폐물이어서 말을 했을 뿐인데 나는 한결 후련해졌다.


 리더를 포함해 모임에 참여한 일곱 명 모두는 모두의 슬픔에 귀 기울였다.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도 새어나가지 않은 채 약속했던 세 시간의 모임은 네 시간을 넘기며 한껏 길어졌다. 허리가 뻐근했다. 그렇게 장시간 집중해서 앉아있던 적은 까마득히 먼 옛날 같았다. 하지만 모임원 누군가의 말처럼 그날의 힘듦은 곱절의 뿌듯함을 몰고 왔다. 힘든데 좋은 그 역설을 모임원 모두가 공감하고 느꼈다. 다음 주에도 우리는 허리가 아플 것임을 알고도 웃었다. 예견된 고통 중 가장 재미나고 즐거운 고통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

 5주간 우리는 서로의 가장 슬픈 날을 알게 되었고, 일하다 분노했던 일들에 대해 공유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겪었던 일들과 앞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도.

 서로가 올려준 글을 먼저 읽고, 쓴 사람이 낭독해주는 음성으로 다시 글을 읽고, 리더의 첨예한 피드백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글을 퇴고할 방향을 정리했다. 낭독하는 내내 실시간으로 모임원의 칭찬을 기본으로 한 피드백이 쏟아져 내렸으며, 모두의 글은 모두의 다음 글을 기대하게 했다.


 마지막 주차 모임을 마치고 분노클 모임의 전체를 회고하는 눈동자들은 물기가 있었다. 내가 살고픈 삶의 일부에 대해 마지막 주차 과제로도 써냈지만, 소감을 공유하는 사이 나는 우리 역시 내가 살아내고픈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호칭을 생략한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며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사이, 눈물의 질감과 온도와 염도를 아는 사이, 분노의 기원에 대해 고민해줄 수 있는 사이……. 우리는 모두 그런 사이가 되었다. 모두의 주저함과 거리낌이 생략된 채로.


 다섯 주차의 모임은 끝났지만 이것은 우리가 맞는 최초이자 마지막인 끝일 뿐이다. 우리는 기혼이어도, 엄마여도, 삼십 대나 사십 대여도, 비혼이어도, 비건이어도, 희귀 질환이 있어도 저마다의 방식대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향해 앞으로도 걸어 나갈 테니까. 자신에 대한 사유가 뒷받침된 징그럽고 가끔 부끄러운 글쓰기를 이어가며. 누구보다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 서로의 독자로서.


 사과집​도, 사다리와 짓우도, 몬도​와 다영​도, 지니도 그리고 나도 글을 쓰며 부지런히 간다.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는 조금 더 근사한 미래로.*



* 마지막 두 줄은 이슬아 작가님의 《부지런한 사랑》의 서문에서 읽자마자 너무 좋아서 소름이 돋았던 문장이라 감히 오마주해보았습니다.


《삼십세끼》 매거진에 넣을까 말까 하다가 일단은 어느 매거진에도 속하지 않게 발행합니다. 혹시 저의 글을 보시는 분 중 매거진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또는 이 글은 독자적인 글로 두는 게 낫겠다 하시는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 부탁드립니다..! 만일 이 글을 매거진 안에 넣어 발행한다면 키워드는 #동질감으로 하려고 했었다는 TMI를 흩날리며~_~

작가의 이전글 기록하는 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