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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Feb 17. 2021

기록하는 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사소하게 행복한 나를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팩트 체크가 가능하다. 이슬아 작가와의 초고 쓰기가 있던 2020년 1월 30일 이후 적어도 2월 말까지는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사진과 영상이 촘촘히 남아 있으므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연차를 내어 놓아서 겨우 갈 수 있었던 3월 중순의 제주도, 집사람의 동기들을 따라 글램핑을 하러 갔던 5월 초의 연휴를 지나면 곧바로 5월 말이 된다. 6월 6일은 갑자기 6월 18일로 건너뛰고, 6월과 7월은 고작 한 페이지 반으로 납작하게 압축돼 버린다.
 인스타그램이 착실히 아카이빙해 주는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3월 20일은 갑자기 4월 30일이 되고, 4월 30일은 7월 9일로 간절기 점프를 해버린다.




 누군들 안 그랬겠냐만 작년의 나는 코로나19에게 씨게 읃어 맞고 잠시 이성을 잃어버렸다. 회사를 가기 싫어 집사람과 매일 아침 카카오톡으로 실랑이를 하며 겨우의 끝을 잡고 출근을 했고, 퇴근하면 모든 에너지를 고갈한 산송장처럼 누워 핸드폰 스크린만 쳐다봤다. 살려거든 죽고, 죽으려거든 산다고 했던가.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야 조금씩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다시금 제 위치를 찾았다. 아, 나는 월급 따박따박 통장에 꽂아주는 회사도 다니고 있었지. 내 옆엔 내가 오백 번 넘어져도 오백 한 번 나를 일으켜 줄 수 있는 반려자 친구도 있지. 맞다, 나 글 쓰는 것도 꽤 좋아하지. 우울의 파도에 밀려 모르게 됐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면서 이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에너지를 되찾은 8월을 지나 9월로 접어들면 사진과 영상이 타임라인에 촘촘히 박히기 시작한다. 등산도 하고, 별것 없는 출퇴근길을 성실히 담아내기도 했으며, 김치전도 부쳐 먹었다. 기특하게도 나의 사진첩은 작년 가을과 겨울 동안 성실하게 바빴다. 글도 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녔고, 먹으러 다니는 게 지칠 때쯤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작년 5월 한 달 동안 12개의 사진밖에 찍지 못했던 나는 이번 설을 쇠면서 쉰 하나의 사진과 영상을 찍었으니 이젠 인정해야겠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내 존재가 희미해질 즈음 지인들이 물어오는 안부가 퍽 다정했다는 것을. 기록하는 나는 기력이 있는 나라는 것을. 본가에서 사 와 어제 맛있게 먹었던 보문산 메아리와 튀소구마 같은 것들은 그래서 사랑스럽다. 어제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더라면 영영 잊히는 기억이 돼버릴지도 모르니까. 오늘 재택근무를 하며 집사람이 차려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저녁에 같이 차려낸 짜파게티를 곁들인 밥상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좋은 것. 오늘을 살아내는 나를 증명하는 이 사진과 영상들이 그럴 것이다.


 오늘까지 축복처럼 이어진 재택근무는 자정을 기해 끝날 테고, 나는 내일 꼭두새벽 같이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일 것이다. 7호선 열차에 몸을 싣고 달리는 열차에서 운이 좋으면 자리에 앉았다가 논현역에 내릴 테지. 까만 어둠 속에 역사를 빠져나와 걷는 걸음 사이로 동이 터오면 대단한 풍경을 마주한 사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보겠다. 모월 모 일의 하늘은 저렇게 검푸르면서 분홍빛이 도는 오묘한 하늘이 었노라고 기록될 수 있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잠실대교나 영동대교의 번쩍이는 불빛을 타임랩스로 찍어 둬야지.


 사소하게 행복했던 나를 어느 우울한 날 재발견할 수 있도록.

 올해의 다짐은 고작 그것뿐이다.



TMI #1: 태재 작가님과 함께하는 ‘에세이 드라이브’를 통해 쓴 글입니다. 이번 글의 글감은 ‘사진’이었습니다.


TMI #2:

작년 인스타그램 스토리 업로드 이력(feat. 본캐 계정).한창 우울하던 상반기는 텅텅 비었고, 기력을 되찾고는 왕성한 기록 활동을 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기록력 유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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