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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Feb 07. 2021

바야흐로 외로웠던 우리가 기다려 온 소셜 미디어의 등장

 외로웠던 우리에게 닥친 뉴노멀

 2020년 한 해, 전 세계적인 고통 중 단연코 상위에 들 법한 고통은 바로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고, 만날 수 있어도 제한적으로 만나야 했다. 집 안에서 모든 욕구를 충족하는 데 거리낌이 없던 나조차 작년 상반기는 치명적이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고, 집순이였던 내가 이렇게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날 줄 몰랐다.


 본의 아니게 사람들은 뉴노멀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임‘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회식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으며, 100명은 50명 이하가 되고, 50명 이하는 다시 10명, 5명 이하가 됐다. 뉴노멀 속에 처음으로 랜선 조직 단합 행사를 운영하게 되었고, 마켓컬리로 상품을 주문해 부서원들의 가정에 배송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19는 Zoom으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듣게 했는데, 스크린에 보이는 나와 참여자들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이내 우리는 숙명 같은 서로의 픽셀화를 받아들였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을 거치며

 싸이월드 시절, 우리는 ‘일촌’으로 맺어져 ‘도토리’로 미니 룸이나 BGM 리스트로 아이덴티티를 표출했다. ‘일촌평’은 대인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이었다. 싸이월드는 ‘국내’에 국한된 사용자들의 제한된 Pool을 넘지 못했고, 모바일의 거대한 파도를 타는 데 실패했다.

 그다음의 트렌드는 페이스북이 주도했다. 실명을 기반으로 한 페이스북에서는 학연과 지연이 얽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고, 내게 ‘피드’의 개념을 이식시킨 것도 페이스북이 처음이었다. (왠지 나이가 역추적 될 것 같지만) 대학교 중후반과 직장 생활 초년 차까지를 모두 페이스북과 함께했다. 인생의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순간들에는 페이스북이 있었던 셈이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는 달리 이미지를 강제한 최초의 소셜 미디어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정방형의 사진만 올릴 수 있고, 사진을 올려야만 무슨 활자라도 덧댈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 20대에 겪었던 또 다른 소셜 미디어의 Big Wave는 분명 인스타그램이었다. 인스타그램은 분명 일대 혁명이었다. 온갖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을 디딤돌 삼아 탄생하고, 수익을 창출해 냈다. 인스타그램은 어느덧 사진 기반 소셜 미디어라는 틀을 점점 깨부수고 24시간만 살아 있는 15초짜리 미디어를 게시하도록 유도하고, ‘짠메랑’*을 트렌드로 끌어올렸다.

 15초 이내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16:9의 세상, 틱톡은 자기 PR이 대세이자 진리가 된 이 시대에서 유용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뜨거운 Z세대의 지지 속에 틱톡은 인스타그램 그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데뷔 무대를 제공했다. 정리하자면 기존 소셜 미디어들은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까지 외부적인 요소가 점차 더욱더 드러나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그래서 클럽하우스의 등장이 유달리 반갑다.




 Back to Analog

 점점 더 외면을 드러내야만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존 소셜 미디어의 문법을 모두 거스른 오디오 기반 앱이라니. 개발의 어려움이 뒤따라서였겠지만, 현재는 아이폰만, 그것도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초대를 받아야만 입성할 수 있는 특징은 이 앱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품귀 현상이 일어났던 허니버터칩이나 초코 추러스맛 꼬북칩처럼, ‘초대를 받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폐쇄성은 이 앱에 엄청난 희소가치를 부여했고, 사용자에게 ‘초대받아 들어갔다’는 특별한 UX를 제공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모두의 얼굴을 프로필에 사용자가 등록한 작은 이미지 외에는 어떤 경로로도 알 수 없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연동시켜놓을 수 있어서 한 단계의 링크를 더 제공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앱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프로필과 그 사진이 전부다. 말하는 사람의 음성과 음성으로 전달되는 화자의 콘텐츠 외에는 어떤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다. 얼굴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옷을 차려입거나, 화장을 해서 꾸며야 할 필요도 없다. 소셜 미디어계 ‘꾸밈 노동’에서 클럽하우스는 모두를 구제해주었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B와 D 사이의 그것, ‘C’

 클럽하우스에서는 대화방을 키워드로 검색할 수 없다. 해시태그나 키워드 알림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여타 소셜 미디어에서 만날 수 없는 바보스러움을 자처한 것이다. 모든 바보스러움은 의도된 것이기에 매우 영리한 접근이었지만.


 현재는 IT 업계 개발자들과 디자이너 등 전문 직무를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업계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감히 사적인 대화를 나눌 것으로 기대하지 못했던 누군가와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작은 브랜드를 키우는 브랜드 오너들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즐겨 사용하던 상품을 만드는 곳, 내가 자주 가던 공간을 운영하는 경영인들의 업계 이야기와 고민을 듣는 내내 어떤 범접하기 어려운 그룹의 전화 통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었다. ‘모더레이터’에게 지정되거나 ‘손을 들어서’ 발언권을 얻으면, 실생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직접 대화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아직 앱이 런칭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유효한 접근이다.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임을 클럽하우스는 계속 상기시킨다**. 오픈채팅방을 검색하듯이 키워드로 대화방을 검색할 수 없기에, 내가 누구를 Follow하고 있는지가 내 대화의 갈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름이나 ID를 알고 있는 누군가를 Follow하고, 그 사람이 어떤 대화에 참여하면 나에게도 알림이 온다. Follow는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아주 큰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 기회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용자의 선택이다.

 삶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했던가. 그 위대한 C의 작용은 지금 이 시간 클럽하우스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누구든 DJ가 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도, 유튜브도, 틱톡까지도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플랫폼은 차고 넘치게 많고,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진입장벽은 높다. 클럽하우스는 이런 진입장벽을 효과적으로 허물었다. 원하는 주제가 있다면 내가 직접 방을 개설할 수도 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그 대화방이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다수의 흥미를 유발하면 그 방은 몇백 명이 참여하는 대화방이 될 수도 있다.


 초대 받고 가입한 후 이틀 동안 열댓 개의 대화방을 드나들어 보았다. 독립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고민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업계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으며, 좋아하는 작가가 스피커로 참여하고 있는 대화방에 오랜 시간 머물러 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팔로워가 너무 많아 DM으로나 겨우 몇 번 질문해본 것이 다였던 누군가와 1:1로 대화해볼 수도 있었다.


 클럽하우스를 뽀개며 저무는 일요일 밤, 이제 어떤 방에서 누구와 얼마나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두근두근해진다. 카메라 공포증이 있지만 ‘입 터는’ 건 괜찮은 사람들, 그리고 초대의 문턱만 넘으면 너무도 낮은 이 진입장벽을 이용해서 얼마나 신기한 대화들이 생겨날지에 대해서도.

 얼마나 지속될지, 앞으로 얼마나 오염(?)될지 모르지만 분명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누구든 DJ가 될 수 있는 이 세계를 나는 두 귀 활짝 열고 환영하려 한다.



Welcome to Clubhouse.



* 짠+부메랑의 합성어. 건배를 할 때 Instagram의 Boomerang 기능을 활용해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것.

** 그냥 Sign Up 해도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가고, 승인되면 가입할 수 있긴 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TMI: 클럽하우스의 아이콘  뮤지션은 현재 Follower 가장 많은 클럽하우스 사용자라고 한다. 업데이트 때마다 가장 Follower 많은 사용자의 프로필 사진을 아이콘화한다고.


TMI #2: 이 글을 쓴 것이 무색하게 클하는 급속도로 화제성이 식어 더이상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졌다. 물론 나도 안 하고. 아무래도 대화를 계속 듣고 싶을 만큼 지속적으로 떠들 수 있는 양질의 소재나, 그런 소재에 맞춰 지겹지 않게 발화할 수 있는 매너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좀 귀했던 게 아닌가 싶음. 이 글도 몹시 머쓱해져서 지울까 했지만 당시의 감상 자체가 헛되었던 것까지는 아니라 내버려둔다고 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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