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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Oct 13. 2020

일방적으로 가까워지는 사람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아니 허락해줄지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가깝고 친밀해지는 사람.


 저에게 요조 언니는 그래서 특별해요. 언니는 그냥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원하는 대로 글을 썼을 뿐인데 가만히 있던 저에게 와닿아버렸거든요. 정확히는 제가 일부러 봤지만요. 요조 언니가 한때 운영하던 웹사이트를 심심할 때마다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어요. 싸이월드 다이어리 같은데 뭔가 흰 바탕에 까만 작은 글씨들이 정갈하게 짜여진 그 느낌이 세련돼보이고 좋았어요. 언니가 쓰는 글들도 재미있었고요. 언니는 재키 챈을 좋아하고 제가 평생 못 할 것 같은 타투도 하고 담배도 하곤 했죠. 담배 피는 사람 안 좋아하는데 언니는 안 싫었어요. 모든 게, 멋져보이기만 하는 언니.


 그런 언니가 계동에 독립서점이라는 걸 냈다니 어떻게 안 가볼 수가 있겠어요? 당연하다는 듯 시간을 내서 언니가 하는 서점에 갔어요. 언니는 책에서 이사람은 나를 요조로 보는지 신수진으로 보는지 끊임 없이 의심하게 됐다고 쓰셔서 저를 조금 뜨끔하게 만들었지만 언니가 있는 서점에 가보고서 저는 언니가 요조로도 보이고 신수진으로도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즐겁고, 기뻤어요.

 언니가 소소하게 하는 작은 행사들을 눈여겨보고, 언니가 하는 행사 중 하나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독립출판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건 마치 요쏘공 같은 거예요. ‘요조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언니는 저의 지평을 넓혀 주고,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만들고, 관심 없던 것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어요.


‘책방무사’에서 진행된 여류시인 낭독회에서 하재연 시인의 시를 읽는 나 (2016년 11월)


 임경선 작가님과 언니가 교환일기라는 걸 썼고, 그게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임경선 작가님 글을 많이 접해본 건 아니었지만 저희 회사에서 한 번 강연해주신 적 있었거든요. 그때 임경선 작가님을 보고 아 저분 진짜 솔직하시고 호탕하시다, 생각했었는데- 임경선 작가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보니 역시 제 생각대로, 명쾌하시면서도 언니 말처럼 ‘앗쌀한’ 솔직함이 멋지게 묻어 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내내 아 이런 말은 정말 밑줄을 쳐두고 싶다 생각하게 되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어요. 서로 다른 두 분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모습도 재미있었고요. 언니나 임경선 작가님 같은 분들을 친구로 두려면 저에겐 얼마큼의 행운이 따라줘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저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이상하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겠지만요.


 고효율 인간인 임경선 작가님 덕분에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 책은 언니 표현을 빌리자면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엿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다정한 힌트’를 무더기로 발견한 느낌이에요. 멋있고 솔직하게, 그러면서 가치 있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에 길게 글 쓰는 것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좋아해 마지 않는 김이나 작사가님과 북토크를 하신다는 소식을 보고 그 북토크를 기다리노라니 이런 긴 편지글이 써졌습니다. 이 글은 아마 언니의 눈에 띄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언니의 글에 가닿고 싶어진다면, 그래서 어떤 조그마한 긍정적인 의미라도 싹틔울 수 있다면 그보다 경이로운 순기능은 없겠지요.

 멋진 언니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줘서, 늘 고맙습니다.


 p.s. 독립출판으로 펴낸 책이 나오고 나니 언니의 이 책이 얼마나 수고가 많이 들어간 책인지 알겠어요. 사선을 넣을지 말지, 누구의 말 뒤에 검은 배경을 넣고 표지는 어떤 빨강으로 할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들어가 완성된 책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언니 책을 함께 작업하신 이연실 편집자님을 꾸준히 언급해주신 것도 좋았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공을 드러나게 해주셨으니까요. 언니가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전 아마 편집자님 성함을 모른 채 지나갔을지도 모르니까요.




2019년 11월 중순, 네이버 라이브로 진행됐던《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북토크를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입니다. 출간된 지 벌써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약간의 수정을 거쳐 브런치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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