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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Oct 06. 2020

쫌쫌따리의 미학

Petit à petit

 일 년쯤 전에 알게 됐다. 이 ‘쫌쫌따리’라는 말. 사투리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웃짤로 소비되던 몇 개 짤들에서 언급된 단어였다.


전설의 쫌쫌따리의 시작.jpg


 된소리가 세 개나 나오는, 다소 비속어 같기도 한 이 단어는 왠지 모를 재미를 주며 일상에 빠르게 흡수됐다. 콩알만큼 운동해 놓고 이렇게 쫌쫌따리 운동해서 언제 살 빼나, 이렇게 쫌쫌따리 모아서 언제 도심으로 이사가나,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여러 차례 활용됐다.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받아 나오는 길에 문득 쫌쫌따리라는 말은 우스운 어감과 달리 폄하하거나 얕잡아볼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다 이 쫌쫌따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매크로를 돌리지 않는 이상 댓글을 달아도 한 개씩 달아야 하고, 유튜브를 시작하더라도 구독자는 한 명부터 쫌쫌따리 모여 100명 1,000명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이 올라가는 브런치도 그렇다. 조회수도 구독자도 정말 쫌쫌따리 올라갔다. 처음부터 단숨에 벼락부자가 되고 싶다는 환상은 일상에서 쉽게 깨어지게 마련이다. 옛말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않았던가. 모든 게 다 이 쫌쫌따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쫌쫌따리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기도 하는 말인 것이다.

 쫌쫌따리의 미학은 뫼비우스의 띠 한 면에 얹혀 있다. 한쪽 면엔 꾸준함의 미학이 자리 잡고 있다. 쫌쫌따리의 의미를 완성시켜주는, 또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꾸준함인 것이다. 꾸준함의 의미 또한 쫌쫌따리가 완성시켜준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함께할 경우 시너지가 어마어마해진다. 쫌쫌따리라고 실망하지 않고 한 번 더 또 다른 작은 성취를 탐내는 것. 탐내보는 것. 1억을 모으기 위해 백만 원부터 만져보는 것, 벌어보는 것, 마침내 모아 보는 것.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50자를 적어 보고, 다음엔 200자 원고지 한 매를, 그다음엔 A4 용지 두어 장을 써보는 것. 그렇게 조금씩 모인 글들은 낱장으로 흩뜨려놓으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쫌쫌따리 잘 모아두면 어느덧 수렴하는 주제가 생기고 그것들이 묶이면 책이 된다.

 타고난 나의 일생 자체가, 그리고 이상하게 급해먹은 성미가 로또를 바라게 한다. 돈도 조금씩 모으기 싫고, 유튜브를 시작하거든 구독자도 하루에 오십 명씩 늘었으면 좋겠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일주일만 해도 이삼 킬로가 훅 빠져줬으면 좋겠다. 브런치 조회수와 구독자 늘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그런 의미에서 지금 구독해주고 계신 분들 너무 감사하지만) 나는 아마 브런치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삼십 대 초반의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기엔 철없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나는 어디선가의 잭팟과 분수처럼 쏟아져 나올 좋은 것들을 가끔 기다리곤 한다. 나이가 조금 듦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로또는 꿈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뿐이었다. 일부 극소수는 로또가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영상 한 개만 올려도 수십만 명씩 구독자가 붙는 인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쫌쫌따리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일들이 찾아와 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쫌쫌따리지만 꾸준한 게 대박 한 방 터뜨리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도.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대단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보다 당연한 명제일 것이다. 로또 한 방 시원하게 터져서 웃는 얼굴로 회사 다니고 싶어질 때, 어쩌다 잘 써진 글이 바이럴을 미친 듯이 타는 상상이 현실이 됐으면 하고 바라고 싶어질 때 그 명제를 다시 되새길 작정이다.

 작은 성취에 감동하고 그 감동을 연료 삼아 계속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이 버거울 땐 반의반 발자국씩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걷지 않는 자에게는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을 테니. 글도 조금씩, 유튜브도 조금씩. 나쁜 습관 교정도 조금조금씩.

 그렇게 나는 내일도 쫌쫌따리 나아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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