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2023/04/14(금) 19:30
용인포은아트홀
A구역 1열
150분 (인터미션 20분)
70,000원 (첫날 공연할인)
싯다르타 이경수
마라 파피야스 송권웅
야소다라 김봄
슈도다나 박태성
찬나 정열
우팔라 안은샘
어린 싯다르타 이도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요즘 렌즈나 안경을 잘 안 하고 다니는 탓에 퇴근하면서 눈에 뭘 착용하는 것을 깜빡했다.
눈이 있었다면- 더 나았을까..? 아니, 눈이 없었던 것이 차라리 나았던 것일까.
극이 극인 만큼 뭔가 자연스럽게 생각할 거리가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잘못된 것일까.
일단, 극장부터 얘기하자면 - 용인포은아트홀은 처음이었는데, 음향 너무 별로다. 다른 종류의 공연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음향은 많이 내려놓고 가야 할 곳 같다(거의 엘아센급).
무대는 높고 깊다. 무대에 설치해 놓은 구조물 때문에 배우가 바닥에 앉거나 엎드리면 안 보인다.
객석을 고려하지 않은 무대 설치와 이상한 음향, 그리고 너무 훤히 보이는 무대 옆 공간.
안 그래도 별로였던 공연을 더욱 별로로 만든 포인트였다. (세트도 너무 빈약했다 ㅜㅜ)
더욱 중요한 내용!
공연 시간 배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막은 80분인데 2막은 55분이었다. 예상대로 1막에서 엄청난 서사를 풀어냈지만 2막은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이 후루룩 끝내버리는 용두사미였다.
80분이 지난 1막 끝에서 붓다는 드디어 출가한다. 그리고 2막 첫 시작은 이미 그 후로 6년이 지난 다음이다. 갑자기 마음속의 번뇌 마라 파피야스가 등장하고 갑자기 열반에 들고 그러다가 궁이 나오고 꽃가루가 뿌려지고 끝난다.
이 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싯다르타가 어떻게 '득도'한 인간이 되었는지를 그리는 일대기였을까? 그의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일대기라고 말하기에도 내용이 부실했고, 깨달음도 극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짧게 지나가서 너무 많은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친 게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고 간 건 절대 아니었는데, 왜... 도대체 왜!!
공주와 닭살스러운 대화는 왜 넣은 것일까? 싯다르타가 얼마나 달콤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진짜 너무 오글거려서 눈 감고 심호흡했다. 이런 장면 좀 줄이고 그놈의 '깨달음'은 왜 더 이야기하지 않는가?
찬나와 우팔라의 이야기는 왜 그렇게 끼워 넣었던 것일까?
"내 마음속에 저장" 같은 거 언제 적 유행어인데.. 이런 유행어 섞는 거면 시즌마다 업데이트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 객석에서 웃음도 안 터짐..
2막 처음에 10분 정도 등장하는 마라 파피야스의 말투는 왜 그렇게 또 킹 받는가? 왜 갑자기 음악중심이 되었는가? 안무는 왜 세기말스러운가? 지크슈를 따라 하고 싶었을까? 왜 넘버의 맥락이 없을까?
6년간 수행했다는데 싯다르타는 2막에서 왜 갑자기 '말투만' 할아버지가 되었는가? 분장이 하나도 없어서 몇 살인지 가늠도 안 되는데 진짜 갑자기 말투만 할아버지가 된다.
어떤 과정으로 수행했다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열반에 들었는가?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혹자가 말하는 인류 최초의 득도한 인간은 어떻게 되었는가? '득도'는 어떤 것인가? 득도한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열반에 든 싯다르타가 어린아이에게 겁나 인자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무엇이 다 이어져 있다는 것일까?
마지막 엔딩 넘버의 개연성은 도무지 모르겠고, 그래서 싯다르타는 궁으로 돌아간 것일까..? 오픈 엔딩인가? 되게 애매하게 뿌려진 꽃가루 양에 현웃 터지기도 했다.
연출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수도 없이 생겨서 오죽했으면 제발 지금 끝내지 마라고 속으로 외쳤을 정도다.
감동을 억지로 자아내려는 엔딩과 커튼콜은 거부감까지 들었다.
종교적인 메시지도 대중성도 없는 이런 극은 진짜 오랜만인 거 같다.
덧. 홈페이지가 있네..? https://siddhartha.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