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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 Jul 12. 2023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세 음유시인 그리고 처절한 복수극

공연 기록

2023/06/25(일) 15:0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C구역 1열

180분 (인터미션 20분)

63,000원 (골드회원 할인)


루나 백작 강주원

레오노라 에카테리나 산니코바

만리코 이범주

아주체나 양송미

페란도 최웅조

이네스 박누리

루이츠 신엽

늙은 집시 나한유

메신저 김상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위너오페라합창단

코드공일아트랩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제목은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을 가리키는 것.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 작품 '빅 3'라고 불린다. 국내에서 잘 올려지지 않은 이유는 인지도 탓도 있겠지만, 주연 배역을 잘 부를 수 있는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메조소프라노가 국내에서는 많이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트로바토레)


22년 11월에 <리골레토(1851)>, 12월에 <라 트라비아타(1853)>를 본 후, 7개월 만에  <일 트로바토레(1853)>를 봤다. 공교롭게 베르디의 세 작품을 각기 다른 오페라단 버전으로 봤는데, 각 오페라단의 느낌을 비교할 수 있어서 그것 또한 좋았다.


세 작품의 스토리상 공통점은 대략 이렇다.

-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의 삼각관계

-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죽음을 선택

- 가족 간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죽임

-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


진부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지만, 베르디가 담고자 했던 사회적인 메시지와 훌륭하고 중독적인 음악 덕분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 같다.


<라 트라비아타> 후기가 없는 이유는..

실망했기 때문이 크다. 위정민 성악가님을 보려고 간 거라서, 그건 진짜 좋았지만!


외국 성악가님들의 연기와 노래에 굉장히 실망했다. 역시 우리나라 성악가님들 최고다. 거기에 무대와 연출 역시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 느낌보다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일 트로바토레와 KNO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 특유의 섬세함, 웅장함, 치밀함이 정말 잘 드러난 극이라고 생각한다.


느리고 서정적인 곡과 빠르고 격정적인 곡이 반복해 등장하면서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거기에 성악가 극한직업을 체험하게 하는 정도로 가사도 빠르고 많다. 극을 다 보고 나면 마치 단편 드라마를 한 편 본 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아름답고 절망적인 아리아와 이중창, 삼중창, 합장의 짜릿함은 박수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오늘 오랜만에 오페라극장 지붕을 걱정했다.


나무위키에도 나와있듯, 최고의 성악가가 필요한 극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모든 성악가님들이 너무나 훌륭했지만, 역시 우리 송미솦 혼자 마이크 찬 거 아닐까 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어쩜 저렇게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지..!


완벽한 캐스트, 국립오페라단, 국립심포니, 국립합창단에 위너오페라단까지 그저 완벽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근데 안무하시는 분들.. 군무 너무 안 맞고 줄거리에 뜬금없는 안무는 좀 깨긴 했다. 5명이라 더 없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예 많이 넣었거나 아예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는 작년부터 빼놓지 않고 봤었는데, 일에 치여 4월에 올라온 <맥베스>를 보지 못한 것이 다시 생각났을 정도로 완벽했다. 크노의 스케일과 연출력, 캐스팅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배경 및 줄거리


베르디의 3대 작품으로 꼽히는 <일 트로바토레>는 1853년 1월 로마의 아폴로 극장에서 처음 공연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409년 스페인의 비스케이 지방과 아라곤 지방의 내전 상황이지만, 이번 국립오페라단이 연출한 <일 트로바토레>는 할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전 후기에서 몇 번이고 적은 것처럼, 고전 배경을 현대로 가져왔을 때 몰입을 깨는 지점이 너무 많아서 배경 트라우마가 있는데, 크노가 크노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고전 해석으로 남겨둬야 할지, 현대로 가져왔을 때 무엇이 좋을지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일 트로바로테>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두 형제를 둔 백작은 갓난아기였던 둘째 아들을 저주했다는 명분으로 집시 노파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다. 화형 당한 집시 노파의 딸인 아주체나는 화형 당한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다 실수로 자신의 아들을 불길 속에 던지고, 백작의 둘째 아들을 납치해 아들로 키운다. 이 백작의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루나 백작이 되고, 납치된 둘째 아들은 아주체나의 아들로 만리코란 이름으로 산다.

첫째 아들이었던 루나 백작은 레오노라라는 여인을 좋아하는데, 레오노라는 만리코를 좋아한다. 루나 백작은 아주체나를 이용해 만리코와 레오노라 사이를 방해한다. 레오노라는 만리코를 살리기 위해 거짓으로 루나 백작에게 사랑을 약속하고 독을 마신다.

레오노라는 독이 퍼져 죽고, 거짓말을 알게 된 루나 백작은 만리코를 죽인다. 아주체나는 만리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루나 백작에게 만리코가 잃어버린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루나 백작은 포효하며 아주체나를 죽인다.

가족의 비극, 처절한 복수, 삼각관계, 사랑의 엇갈림 등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진부하고 또 진부한 그런 스토리다. (내용이 그리 크게 낯설지 않아서 처음 접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이다 보니 배경을 현대로 가져오면서 더욱 드라마 보는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무대


커튼 올라가자마자부터 감탄했다. 쓰레기통 하나까지 너무 완벽했다. 배경뿐만 아니라 의상도 완전 현대로 왔는데, 너무 제대로 가져와서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비록 귀여운 범리코의 열손가락 반지와 체인 때문에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특히 2막 연출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2막 무대 디자인 (출처: 프로그램북)

2막 1장의 <대장간의 합창>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앞부분이 생소하다면 1:05부터-)

https://youtu.be/yjMHCzoneuM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중세시대의 생업인 농경과 수렵에 필요한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이 곡이 현대로 오면서 집시 소굴의 스트리트 파이트의 현장이 되었는데, 이질감 1도 없이 그들만의 파이팅 넘치지만 폐쇄적인 작은 나라가 그려졌다. (위의 무대 디자인 사진에서 노란색 바리케이드 부분이 싸움의 링이 되는 소품이다.) 오페라에서 돈이 오고 가는 스트리트 파이트를 볼 줄이야....!!


집시 여인 아주체나의 의상도 완벽했다. 실수로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백작의 아들을 납치해 키우는 여인인 아주체나를 홈리스 여인으로 표현했다는 연출가의 노트를 미리 읽고 무대를 봤는데, 진짜 미국 홈리스와 너무나 비슷하게 그렸다. 아마도 목적도 의미도 잃고 사는 그런 여인처럼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또한 2막 4장의 수녀원 장면도 놀라웠다. 특히 레오노라가 수녀가 되기 위해 입장할 때 등장한 거대한- 진짜 거대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은 소름이었다.


루나 백작과 만리코가 레오노라의 양팔을 잡고 대립하는 모습과 뒤로 보이는 십자가 예수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도 인상 깊었다. 의도한 연출이었겠지만, 루나 백작과 만리코, 양 옆으로 손을 벌린 레오노라의 모습과 평화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였다.




오늘의 커튼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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