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 Jun 29. 2023

9.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ADHD 약을 처음 먹었던 날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은 다음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ADHD 약을 먹었다. 그리고 ADHD에 관한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나는 도서관에 가면, 읽지 않을 책을 들춰보면서 서가를 어슬렁거리는 게 좋았다. 이 책도 보고 싶고 저 책도 보고 싶어서, 책을 한 아름씩 빌려서 나왔다. 하지만 그 호기심과 열기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식고는 했다. 빌린 책들을 집에 와서는 책장도 들추지 않고 반납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날은 필요한 책을 한 권 발견하자, 다른 책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집어든 책은 <나는 왜 침착하지 못하고 충동적일까>였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쉽게 읽혔고, ADHD의 개념조차 모르는 내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는 다 들어있었다. 

그 책을 자리에 앉아서 읽다가 그대로 빌려서 도서관을 나왔다. 다른 책이 궁금하지 않았다. ‘필요한 게 이것이고, 이것이 있으니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햇살이 정수리에 따스하게 내리쬐었고 뺨에 닿는 바람이 선선했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충만감, 편안함, 안전하다는 느낌, 

두려움 없이. 슬픔 없이. 

아주 오랜만이었다.

나는 길거리에 서서 좀 울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나도 앞으로는 이렇게 살겠구나. 

생각했었다.      


그 고양감은 명상할 때, 명상이 특별히 잘 되던 날 느끼던 행복감과 똑 닮아 있었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명상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안정감을 나는 갈망해 왔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명상해야 짧게 맛볼 수 있었던 이 안정감을 다른 사람들은 디폴트로 누리며 살았다고 생각하자,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곧 알게 된다. 그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말이다. 

특별하던 그날의 안정감과 고양감은 그날 하루로 끝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