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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 l ll Feb 20. 2023

Setsu.

  죽음이란 것을 몰랐던 나이였다. 나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를 찾았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향해 소리를 쳤다. 저 아새끼 입 좀 닥치게 하라고. 엄마는 그때마다 내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할머니가 나를 보러 올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할머니를 찾으면 안 된다고. 나는 앙다문 입술을 삐쭉거리며 빨개진 눈가를 여러 번 비볐다. 그리고 밤마다 조용히 현관에 나가 할머니를 기다렸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쯤, 둔탁한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갈라진 손가락을 당신의 입술에 붙이며 오므리던 그날들을 떠올렸다. 새벽녘에 차가운 공기를 감싸 안고 들어오던 그 따듯한 품을 상상했다.      

 

  엄마는 할머니와 달랐다. 나를 낳고 다행이었다는 말을 했다. 더 이상 애를 낳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스물한 살의 누나를 낳았던 엄마에게, 할머니는 다음은 아들 낳으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출산 직후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엄마에게 밤은 아주 깊었다. 할머니가 했던 말은 아픔이 가시지 않은 엄마에게 진한 상흔을 남겼고, 엄마는 외갓집에 나를 데리고 갈 때마다 할머니와 말다툼을 했다. 매번 싸움은 나에 대한 엄마의 한 마디로 끝났다.   

  

  아들 낳았으면 됐잖아.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아들 낳았으면 이제 된 거 아냐? 더 이상 나한테 뭐 바라지 마.

     

  화장하던 날, 엄마는 거꾸로 신은 신발을 끌고 산부인과를 달려왔던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시댁 식구 모두 아이를 보러 간 와중에, 엄마 곁을 지키던 할머니의 얘기를 했다. 엄마는 가쁜 숨을 바쁘게 토해냈다. 꺽꺽 소리를 냈다. 하얀 뼛가루가 민물에 흩어졌다.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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