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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야 Jan 29. 2023

이중 잣대

노숙자 쉼터로 가는 지름길

당신이 만약 노숙자 쉼터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손쓰지 않고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중 잣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노숙자 쉼터로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주위를 살피면서 걷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곳곳에 함정이 설치된 산 속을 홀로 걷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곳은 나무가 빽빽하고 높게 자라 해도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사히 산을 내려가려면 발 밑을 잘 살펴보면서 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지거나 5m짜리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도 이와 같습니다. 방대한 양의 정보는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을 넘어 소음으로 머리를 지끈거리게 합니다. 때문에 판단이 쉽게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말들은 우리를 현혹합니다. "테슬라가 가격을 내렸다던데, 판매량이 증가해서 매출이 상승하지 않을까?" 우리는 수요와 공급 곡선을 알고 있기에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을 내리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떠올립니다. 다른 사례도 있는데 말이죠.



언젠가 찰리 멍거는 경영대학원 두 곳에서 다음 문제를 냈습니다. "여러분은 수요와 공급 곡선을 배웠습니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을 내리면 수요가 증가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배운 것이 맞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멍거는 계속 말했습니다. "가격을 올려야 수요가 증가하는 사례들을 말해보십시오." 그러자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경영대학원 두 곳에서 사례를 하나라도 말한 사람은 약 2%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간혹 가격이 높으면 품질도 높다는 신호가 되어 매출이 증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멍거의 친구인 빌 블하우스도 같은 사례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복잡한 제품을 생산하는 베크만 인스트루먼츠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제품은 고장이 발생하면 구입 고객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비유하자면 유정 바닥에 설치하는 펌프 같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는 자사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데도 판매가 부진한 것은 가격이 낮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통 가격이 낮으면 품질도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격을 약 20% 인상하자 매출이 증가했습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저는 위의 사례를 통해 테슬라의 매출이 감소한다고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한 가지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꼬집은거죠. 저는 테슬라 주주도 아니고 테슬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는 대충 압니다. 뻔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예측하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해석을 내리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테슬라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의 출발은 이렇습니다. "테슬라가 가격을 내렸다던데, 판매량이 증가해서 매출이 상승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판매량 증가가 재무제표에 반영되기도 전에 주가는 상승합니다. 최근 상황이 그렇죠. 이때 가격이 하락하거나 테슬라와 관련된 부정적인 뉴스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십중팔구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테슬라 가격 인하'로 꼽을 것입니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기업의 경제 여건이 나쁘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고, 실제로 가격을 낮췄지만 판매량 감소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이죠. 노숙자 쉼터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습니다. 





흐리멍텅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귀동냥을 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는 것 정도겠죠. 그런 의미에서 에드 세이코타의 말은 투자 바이블의 첫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할 만합니다. 그는 잭 슈웨거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얻든 잃든, 모든 시장 참여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시장으로부터 얻어요.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잃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은 돈을 잃음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는 셈이죠." 



어떠한 기준도 가지지 않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어떻게 주식시장에서 '장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단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뉘입니다. 갈대처럼요. 잠시만요. 다시 생각해보니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갈대는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폭풍을 이겨내지 않습니까?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고 쓸개를 팔아버린 사람들이었네요. 



정말로 사람들이 노숙자 쉼터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까요? 어쨌거나 그들도 투자를 하기 위해 주식시장으로 온 동료인데 말입니다. 그들은 왜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을까요? 왜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것일까요? 적어도 제가 본 사람들은 세이코타의 말처럼 '돈을 잃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돈을 벌고 싶어하죠. 누구나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하지만 우리가 정보를 걸러내고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투자에 부적절합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시 유전자'를 탓해야 할까요, 너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해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환경을 탓해야 할까요? 저는 둘 다 탓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요. 아마도 여러분도 배웠지만 무심코 지나쳤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유전자를 거스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환경에도 거스를 수 있죠. 놀라운 능력입니다. 지구상의 어느 생명체도 가지지 못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불완전합니다. 너무 빨리 초능력을 가진 탓에 적응하는 데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꼼꼼하게 검산해야 합니다. 문제를 역으로 뒤집어 보는 방법도 좋은 해결책입니다. 멍거가 알려준 이 방법은 탁월하지만 동시에 너무 따분해서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만 지켜도 남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용한 개념 또 하나는 맥캐프리 학장이 전해준, 어느 농부의 말입니다. "내가 죽을 장소를 안다면 그곳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 이는 복잡 적응계와 우리 인식 구조에 관한 것인데, 흔히 문제를 뒤집어 생각하면 더 쉽게 풀린다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도를 돕고 싶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인도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 대신 '내가 어떻게 하면 인도에 피해가 갈까? 그 피해를 막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두 질문이 논리적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수학에 통달한 사람은 잘 알고 있듯이, 세상에는 뒤집어 생각해야만 풀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보다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뒤집어 생각하는 방식이 유용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뒤집어 생각해봅시다. 어떻게 하면 실패할까요? 성공하려면 무엇을 삼가야 할까요?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게으르고 못 믿을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덕목을 갖추어도 못 믿을 사람이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고 못 믿을 사람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 찰리 멍거 바이블


지금 당장 뉴스와 재무제표를 보는 것을 멈추세요. 그리고『현명한 투자자』같은 고전을 꺼내세요. 처음 시작하는 분야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하는 방법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방법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 생각, 지식 체계를 배우세요. 멍거가 극찬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이기적 유전자』는 여러번 반복해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기왕이면 굴드의 책도 읽으세요. 장대익 교수가 쓴『다윈의 식탁』은 진화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귀중한 책입니다. 기준을 만들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세요. 그리고 판단을 내릴 때는 여러번 다시 확인하세요. 당신의 소중한 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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