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하얀 초콜릿이 후드득
나는 생일에 큰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생일을 알리는 것도 꺼려지고, 다른 사람이 내 생일을 굳이 기억해 주는 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몇 해 전, SNS 프로필 옆에 케이크 모양 이모티콘이 뜨는 걸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계정까지 일일이 들어가 생일 알림 설정을 꺼두었다.
이처럼 스스로 방어적이기에 생일에 얽힌 특별한 추억도 거의 없다. 매년 빠짐없이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엄마가 계시지만, 올해는 엄마의 속초 여행과 겹쳐 그조차 없었다. 사실은 다행이었다. 몇 년 전부터 엄마의 미역국엔 다진 마늘이 과하게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생일날 미역국 투정만큼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가장 오래되고 또렷한 생일의 기억은, 내 생일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생일이다.
당시엔 색종이로 접은 생일 초대장을 받아 친구 집에 가곤 했다. 케이크와 치킨, 과자, 김밥이 식탁 위를 가득 채우고, 케이크 컷팅을 마친 뒤엔 놀이터에서 얼음땡을 했다. 많게는 서른 번도 넘게 그런 파티에 다녔을 것이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같은 반 친구가 수업 중 불쑥 말했다. “오늘 내 생일인데, 수업 끝나고 우리 집에 올래?” 나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망설임 없이 “응, 갈게”라고 대답했다. 선물을 못 챙겼다고 말하자, 친구는 괜찮다며 환히 웃었다. 그 미소가 진심처럼 느껴졌기에, 평소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지 않던 나도 마음이 놓였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가 내 자리로 다가왔을 때, 나는 그 파티에 초대된 사람이 나 혼자라는 걸 알았다. 친구를 따라 도착한 집은 불이 꺼져 있어 어두컴컴했다. 물론 아직 불을 켜지 않아서였겠지만, 그전까지 다녀본 파티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친구는 익숙하게 불을 하나씩 켰고, 나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친구의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크라운 베이커리 케이크 상자를 들고 계셨다. 친구가 알림장을 올려두었던 갈색 탁자 위에 케이크와 과자가 담긴 접시가 놓였다. 아버지는 촛불을 켜고 물러나셨고, 나는 이런 생일 파티에 조예가 깊었기에 능숙하게 축하 노래를 부르고 친구에게 소원을 빌라고 했다. 친구가 촛불을 불고 우리는 다 함께 박수를 쳤고, 친구의 아버지는 와줘서 고맙다, 재밌게 놀아라 같은 인사를 남기시고 자리를 비우셨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케이크만큼은 선명하다. 흰 초콜릿 조각이 장미꽃잎처럼 얹어진 케이크, 둥그렇게 둘러진 투명한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풀다 초콜릿이 후드득 떨어졌고, 우리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먹었다. 주우려고 하면 또 바스러져 버리는 하얀 초콜릿 조각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대면서, 우리는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케이크를 거의 다 먹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가 어떻게 끝났는지, 그 친구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우리가 단짝이 되었다든가 하는 따뜻한 결말도 없다.
그저, 그날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먹은 날이었다.
그 케이크의 맛이 한동안 잊히지 않아 엄마를 졸라 다시 사봤지만, 이상하리만치 맛이 없었다. 믿기지 않아 몇 년 뒤 다시 도전했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비싸고 유명한 케이크를 맛보지만, 그때 그 케이크 같은 맛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촉촉하고 보드랍고, 달콤하고 포근했던 그 케이크.
프랜차이즈 빵집 진열장 맨 아래 구석에서 가끔 그와 비슷한 케이크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헛된 기대에 돈을 쓰지 말자’며 지나치지만, 만약 누군가 그 맛을 장담해 준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케이크를 고를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케이크는 너무 일찍 찾아왔고,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그 맛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