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속의 자유

나는 시시포스처럼 산다

by INA

어떤 동료의 이른 퇴근 인사에 나는 담담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로만 답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언제 퇴근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의미로 일하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연이은 이른 퇴근 인사에는 자신의 조건이 더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배어 있었다.

"나는 이런 여유로운 삶을 산다, 부럽지 않은가?"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내게는 무의미했다.


나는 ‘워라밸’을 오해하지 않는다.


워라밸은 단순히 일을 적게 하고 많이 노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그 외 시간엔 삶의 가치를 채워 넣는 데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시간을 무의미한 소비로 흘려보낸다.

워라밸의 핵심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자신을 키우는 ‘몰입’이다.


나는 밥 먹는 것도 잊을 만큼 몰입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통해 의미를 만든다.

그 몰입의 태도, 성장의 자세가 나를 자극한다.


반복의 삶, 그럼에도 나는 ‘시시포스’처럼 산다


우리는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반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깊이는 달라진다.

시시포스는 바위를 산 위로 올리고,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바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바위로 다시 향해 내려가는 찰나에, 자신의 운명을 긍정한다.


삶의 의지를, 저항의 기쁨을,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유의 감각을 되찾는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 또한 단순히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운명을 사랑하는 능동적 태도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샤르트르의 말을 떠올린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장 폴 샤르트르-


모든 사물은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목적 없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살아내는 것 자체로 의미를 세운다.

인간은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존재의 기쁨을 경험한다.

삶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살아내는 태도에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바위를 밀어 올린다.

내일 다시 굴러 떨어질지라도,

나는 또 내려가 그 바위를 맞이할 것이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시시포스처럼 웃는다.


이 글은, 한 동료의 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나는 타인의 부러움에 기대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과 기준으로 매일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다.


그 삶의 무게와 반복 속에서, 나는 오늘도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 속에서만 피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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