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의 음료, 한 사람의 미소

작은 선의가 돌아오는 순간

by INA

전철 역사를 통과하다가, 다리 위에서 검은 형체를 보았다.

낡은 이불을 겹겹이 쌓아 둔 듯한 풍경은 문득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초가을이라지만, 여전히 30도를 넘는 날씨였다. 깔끔히 닦인 역사 앞, 그 이질적인 풍경은 더욱 도드라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움직임을 지녔다. 휠체어에 앉은 노숙인. 겨울부터 벗지 않은 듯한 긴팔 옷차림과 낡은 니트 모자가 그의 계절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스쳐 지나쳤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이 더위에 얼마나 답답할까, 그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우연히 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 그것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곧 머뭇거림이 따라왔다. 그가 그걸 원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인데, 돈을 달라면 어떻게 하지? 단순한 행위 하나가 복잡한 계산으로 부풀어 올라, 한참을 망설이며 걸음을 이어갔다.

역사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지나치면 후회가 남을 것이라고. 결국 다시 되돌아가, 모르는 이의 고단한 삶 앞으로 갔다. 자연스레 옆을 지나가는 척하며 음료를 내밀었다.
“이거, 드실래요?”
그는 내 손에 들린 음료를 보자마자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얼굴 가득 번진 웃음.

치아는 몇 개 보이지 않았고, 운동화 밑창은 반쯤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지은 웃음은 한없이 해맑았다.
“고맙습니다.”


나는 미소로 답하고 길을 이어갔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원래의 방향으로 곧장 가지 못했다. 내가 일부러 돌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빙 돌아가야 했다. 작은 숨김 속에 오히려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해 본다.

어떻게 그런 웃음이 가능할까. 가진 것이 적음에도 그렇게 빛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역설. 평범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쓴웃음으로 삶을 일관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는 웃고 있었다.

삶의 상처와 궁핍을 고스란히 지닌 채, 그럼에도 맑게 웃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 얼마나 무겁든, 그 무게를 잠시 잊게 해 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음료수 한 병에 담긴 것은 결국 나의 동정이 아니라, 그가 내게 건넨 평온이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인간의 존엄이었다.


바라게 된다.

언젠가, 그의 웃음이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조차 지켜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인간이 인간을 바라볼 때 두려움이 아닌 환한 미소가 먼저 건네지는 평온한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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