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관계는 내가 원하는 걸 밝혀 주는 등불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럽고 비탄에 잠겼던 순간이 있다.
그 사람과의 관계였다. 에너지, 시간, 돈, 그리고 마음까지 총체적으로 낭비했던 경험.
한때는 그 기억만 떠올려도 스스로를 자책했고,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단정 지으려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최악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정반대의 사람을 고른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삶에 적용한 결과였다.
비탄에 빠질 만큼 후회스러웠던 시간은,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돼 주었다.
심리학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겪은 후, 이전보다 더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현상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른다.
나의 경험은 그 개념을 입증하듯, 세 가지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첫째, 가치관의 명확화다.
‘좋은 사람’이라는 추상적 바람은, ‘존중할 줄 아는 사람, 감정적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바뀌었다.
둘째,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무심코 넘겼을 말투와 행동에서 지금은 경보가 울린다.
상처는 경계심을 예민하게 만들었고, 이는 나를 지켜내는 방패가 되었다.
셋째, 자기 이해의 심화다.
나는 왜 그런 사람에게 끌렸는가.
그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내 안의 취약점과 무의식적 패턴을 보게 되었다.
그 덕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끔찍했던 시간은 일종의 수업료였다.
값비싼 수업이었지만, 그것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라는 자산으로 남았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뒤, 나는 더 단단해졌고 무엇이 빛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얻었다.
후회와 비탄은 결국 현재의 행복을 더욱 값지고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계정을 차단했는데도, 몇 년에 한 번씩 연락을 시도한다.
“나는 네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라며, 마치 변함없이 나를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듯한 말투로.
나는 그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그는 정반대였다.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나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삼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의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성장을 멈춘 채 과거의 기억을 뒤틀어 자기 합리화를 반복하는 것일지 모른다.
새로운 성취를 만들지 못했기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라는 환상을 과거의 관계 속에서만 증명하려 하는 것일지도.
그의 시간은 과거에 고여 있고, 나의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그 괴리가 곧 소름의 정체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최악의 관계는 내 삶을 앗아간 듯 보였지만, 사실은 내 안의 빛을 키워주었다.
그 어둠을 '통과한' 덕분에 나는 지금, 더 단단히 서 있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드러내는 거울이고, 나의 과거는 결국 현재의 나를 선명하게 비추는 배경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본 자만이,
빛의 방향을 선명히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