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지혜지만, 강요될 때는 편견이 된다
그의 말투에는 언제나 바깥세상의 바람이 묻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한국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자랑스러워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거기서 버텨낸 시간은 분명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문제는 그 자산이 곧 정답이 된 듯, 후배들에게 흘러나오는 조언 속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이 좁은 한국에 있지 말고,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라.”
그 말은 충고라기보다 선언처럼 들렸다.
젊은 이들이 미온적으로 반응하면, 그는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한탄했다.
“그깟 국적 바꾸는 게 뭐가 어렵다고... 왜들 그렇게 시큰둥한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국적은 ‘그깟’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체성과 가족, 살아갈 뿌리와 미래까지 걸린 중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외국에서 경험을 쌓는 일이 곧 최고의 경력으로 이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외국에 나가야만 배울 수 있었고, 한국은 여전히 좁고 갇힌 공간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계는 이미 우리 손안에 들어와 있다.
인터넷과 수많은 어플이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원격 협업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어학연수는 더 이상 필수 관문이 아니다. 한국에 있어도, 세계와 맞닿을 수 있는 창은 충분히 열려 있다.
조언이 빛을 잃는 순간은, 그것이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강요로 바뀔 때다.
그의 말은 지혜라기보다 편견처럼 들렸다.
경험은 자기 삶의 증거이지, 타인에게 던져지는 답안지가 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젊은이들의 무심한 반응에서, 새로운 시대의 자유를 보았다.
그들은 해외를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해외만이 답이라는 낡은 사고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길 앞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건네준 특권일 것이다.
경험은 분명 귀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결론을 강요하는 순간, 경험은 지혜가 아니라 족쇄가 된다. 인생 선배로서 "내가 옳았다"는 정답 같은 족쇄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며 다양한 길을 신중하게 선택할 자유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조언이 진정한 울림을 갖기 위해서는 나의 삶을 자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여백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비록 국토는 좁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저마다 넓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 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