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다시 산다고 했을 때, 다들 걱정부터 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서 문화, 대화, 식성, 모든 것에서 '안 맞을 것'이다. '많이 부딪힐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난 모든 사람의 기대를 깼다. '왜 내가 일찍 집에 안 돌아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소소한 일상 대화, 함께 하는 식사와 커피 시간, 그리고 저녁 산책시간... 나에겐 매일이 휴가 같은 기쁜 날들이었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대화의 내용이 점점 부족해졌다. 엄마와는 성향도 비슷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반면에 경상도 남자인 아빠와의 묵묵하고 지극히 짧은 대화가 낯설었다. 나의 관심사, 원하는 길과 목표를 대화를 통해 알아가기보다, "이걸 해야 된다" 식의 대화의 수가 많아졌다. 아빠와의 대화가 어려웠다.
독서하던 '아빠 딸'은 어디 갔을까?
난 어릴 때 '아빠 딸'이었다.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난 아빠가 좋아하는 독서를 하는 티를 최대한 많이 냈다. 아빠가 귀가할 시점쯤 일부러 현관문 앞에서 누워서 책을 보거나, 아빠가 들어오실 때 한 손에 꼭 책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역시 어릴 적부터 잔머리와 전략은 확실했다.
다독가이신 아빠와 대화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독서를 통해 소통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실천으로 잘 옮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책을 사는 기쁨만 있고 읽는 기쁨은 몰랐다. 책 한두권 훌터보는 '티'만 내고 있었다.
이 영상이 나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이 함께 하는 빡독 행사. "우리 집을 빡독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독서 습관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체인지그라운드 66챌린지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Phillippa Lally와 연구진의 연구결과 한 습관을 만드는데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66챌린지 룰은 간단했다. 만들고 싶은 습관을 정하고, 매일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체크하고 여정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하는 66 챌린지 - 매일 독서 30분
매일 부모님의 생활을 보면서 '이것이 꾸준함이구나'라고 느낀다. 주 6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식사하고 출근하신다. 365일 꾸준한 패턴이다. 그래서 66챌린지 도전에 엄마가 필요했다. 난 부모님의 꾸준함 레벨을 따라가기엔 여전히 '애'였다.
66챌린지 첫 주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30분을 읽는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30분 동안 오로지 책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의 독서 수준과 집중도를 확실히 깨닮는 순간이었다. 내가 집중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문해력이 낮고, 독서습관은 '아빠 딸' 시절 10살 때 어디 버렸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66일, 66개 포스팅, 66만 개 대화 주제
66일간의 100% 완주를 통해 매일 독서 30분 목표가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었다. 시계를 쳐다보던 나는, 포커스 앱의 끝나는 소리에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여정 속에서 부모님과 대화에 변화가 일어났다.
엄마, 이 책 진짜 좋다. 같이 읽을까?
엄마와는 66 챌린지를 같이 해서 포커스 앱을 함께 틀어놓고 독서하는 시간이 자주 생겼다. 평일에는 집에서 함께 독서를 하고, 주말에는 66 챌린지 핑계(?)를 대며, 카페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는 서로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을 읽어주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었다. 고영성 작가님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낭독은 아주 효과적이고 잊혀서는 안 되는 독서법이라고 소개되었다. "낭독은 글을 읽을 때 더 많은 감각을 요구한다. 에너지를 더 쏟게 하지만 그만큼 큰 혜택을 준다. 글의 더 깊은 이해를 통해 작가와의 만남을 더 밀도 높게 만든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pg.211). 자연스럽게 작가의 생각을 통한 나의 배움과 생각을 나누고, 엄마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이 생겼다. 포커스 앱에 쌓이는 독서 시간만큼, 우리가 나누는 시간과 대화가 깊어졌다. 책 속의 배움과 인생이, 우리 삶에 스며드는 순간들이었다.
아빠, 나 이 책 읽었는데....
매일 30분 책 읽기를 '티' 내기 시작했다. 아빠 독서하실 때, 은근히 옆에서 책을 읽었다. 그날의 목표치 30분을 읽었어도, 아빠의 독서시간에 나도 동참했다. 아빠는 내가 읽는 책을 궁금해하셨고, 책을 통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빠는 매일 책을 읽는 다독가 이시며, 고영성 작가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나온 독서법을 다 활용하신다. 독서습관에 레벨이 있다면 만렙이시지 않을까?. 심리학, 철학을 몇 년을 '한 놈'만 패시다가, 요즘에는 진화론을 점령하고 계신다. 나는 체인지그라운드 추천 도서, 교육학 도서, 그리고 씽큐베이션 선정도서를 읽으면서 아빠가 읽으시는 책과 비슷한 분야 혹은 모르는 부분을 아빠에게 여쭈어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어느 분야의 이야기도 내 '수준의 키'에 맞게 알려주셨다. 어려운 내용을 이해 못하는 나를 다독여 주시기도 했다.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논문을 읽다가 어려워서 분노하고 스트레스받았다. (어렵게 공부하면 더 머리에 남는 다고 하니...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아빠는 논문을 함께 읽어주셨다. 독서와 공부의 재미를 느끼도록 아장아장 걸을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셨다. 30분 책 읽기만 했을 뿐인데... 우린 식탁에서 토론하는 부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교수의 책을 읽고, 사회적 이슈와 아픔에 대해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사회적 이슈 하나로, 우린 심리학, 진화론, 교육학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빠와의 대화가 쉬워졌다.
독서하는 성장형 가족
66 챌린지가 끝나고, 우린 더 책을 많이 읽는다. 우린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우린 더 많은 나눔을 한다. 독서와 공부의 중요성이 우리 가족에 확실히 자리 잡히고, 함께 공부하고 독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무언의 독서 타임이 생겼다.
아빠와의 대화, 이젠 어렵지 않다. 책을 통해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부모님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난 받기만 했었지, 부모님에 대해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독서를 통해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아빠와의 대화가 어려웠던 건 오직 나에게만 포커스를 두었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주고, 나의 관심사를 알고, 내 위주의 대화를 원했던 나의 이기적임을 깨닮게 되었다. 독서습관이 나에게 읽는 행위를 넘어 삶에 아웃풋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나의 독서의 삶에 시작이 되어준 66 챌린지. 정말 감사하다. 새해마다 적는 나의 독서습관 목표가 66일 만에 이루어졌고, 나의 성취감을 넘어서 가족과 함께 누리는 기쁨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아닌 현실 가능하고 계속 이어가고 싶은 습관이 되었다. 66 챌린지 10번을 통해 나와 우리 가족이 함께 성장할 여정이 기대된다.
독서습관 좋아 보인다. 그러나, 66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1일 프로젝트 - 빡독 행사
<인생을 레벨업 하라>의 저자 스티브 캄은 최종 목표를 공표할 때, 중간 목적지 (중간 목표)를 세우고 그 중간 목표들을 도달할 때 최종 목표를 달성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순간의 힘, pg. 187). 작은 승리처럼, 66일간의 여정에 중간 목표들이 필요했다. 33일 되는 날, 빡독 행사에 참석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그날 책 한 권을 완독하고 많은 배움이 있었다. 66일이 부담스럽다면, 빡독 행사를 통해 책 한 권 완독의 기쁨을 누리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