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0시 통금시간이 있다. 전혀 강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통금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꼭 집에 10시까지 가는 이유가 있다.
바로, 부모님 (+순돌이)와 함께 걷는 산책시간 때문이다. 가볍게는 5 천보에서 길게는 1만보까지 걷는다. 순돌이 산책을 위해 가볍게 시작된 우리의 산책시간이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간식달라는 순돌군
이 귀여운 녀석, 자신의 산책시간을 꼭 아는 듯이, 10시쯤이면 눈빛이 달라진다.
나갈 시간인데 왜 소파에 앉아 있지?라고 하는 듯....
하루 5 천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산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난 불규칙한 잠 습관, 업무시간, 그리고 삶의 불균형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지극히 또 다른 '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걷는 사람, 하정우> 책을 읽게 되었다. 하정우는 말했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p.8)
'바쁘다'라는 핑계로 정말 내가 산책도 못 갈 만큼 바쁜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을 더 깨닫고 느끼면서 66 챌린지가 떠올랐다. 66 챌린지를 통해 책 습관을 만들 때, 겨우 30분 독서시간의 시작으로 이젠 독서습관이 내 몸에 자리 잡았다. 30분 산책 정말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가야 할 식당을 찾거나, 운전을 해야 하거나,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특별한 약속이 아니다. 우리의 산책은 그냥 순돌이 목줄 매고 운동화만 신으면 시작할 수 있었다.
관계도 한 걸음씩
하정우의 걷기 모임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걷지만 하루 시간을 맞추어 함께 걷고 독서모임을 한다. 매일 핏빗의 통해 걷는 과정도 알고 1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모여 독서 후 나눔의 시간을 가진다 (p. 203). 우리 부모님은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신다. 나의 배움의 열정 유전자는 당연히 부모님에게서 왔다고 생각한다. 우린 집에서 함께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꼭 시간을 정해서 하기보다,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꼭 시간을 정하거나 해야 되는 독서 토론 시간이 아니면, 다른 것에 밀려날 때가 있다. 그러나, 걷는 시간만큼은 꼭 지킨다.
함께 걷는 시간을 통해, 하루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그리고 삶을 나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매일 순탄하거 발전하는 기쁨이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우리가 함께하는 한 걸음마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벼락치기로 만들어가는 부모와 딸의 관계가 아닌, 우리의 쌓여가는 걸음수 속에 더 관계가 쌓이길 기대해본다.
하정우는 기도한다.
그저 신이 내게 맡긴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두 다리의 힘만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아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p.291)
나도 기도해본다. 그저 신이 내 두 다리, 엄마 두 다리, 아빠 두 다리, 순돌이 네다리에 걸어가는 힘을 갖게 해 달라고. 우리가 그냥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난 10시 통금시간을 향해 버스에 올라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