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아널드의 “역사”를 읽고
역사를 주입식으로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된 나. 어떻게 하면 주입식 역사 공부를 타파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역사 기초 전반에 관한 책을 읽어보며 역사가들의 방식을 탐구하고 나의 역사 사유 방식에 적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아 반성을 토대로 역사가들의 선례를 빠르게 답습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인들이 아는 기초 역사 도서로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인데,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내 기준에 진입장벽이 높아 책을 읽으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뭣도 모르면서 유명한 책부터 읽었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쉬운 책을 찾아 검색해보니… 좋은 책이 나왔다! 그 이름하여.. 존 아널드의 “역사” 되시겠다.
존 아널드는 “역사가 무엇이고, 역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역사의 쓸모가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음을 말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토대로 역사를 사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는데, 나는 먼저 이에 대해 말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사유해야 하는 이유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종종 하는 말 중 하나는 “우리나라 와이파이가 진짜 빠르구나…”이다. 외국에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문화를 경험할 때 우리나라의 문화를 고찰해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를 사유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현재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의존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사는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선생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존은 역사란 논쟁이기에, 논쟁이 변화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참’은 아닐 수도 있다. 이때 어떠한 개인이나 시스템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옳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역사를 통해 증명된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사고하고 분별하게끔 인도해주는 역사를 가만히 두어선 안 된다. 역사는 현재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
* 여기서 존은 ‘망탈리테’(mentalité)라고 부른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먼저 말하지 않는다. 보물을 캐듯, 우리가 직접 역사를 찾아가야 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진실한 이야기”이다. 이는 사료에 적힌 역사를 탐구하여 실증을 밝히기에 ‘진실’이자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역사가들이 각자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해석하기에 ‘이야기’라고 한 것이다. 이제 “역사 = 진실한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역사 연구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보겠다. 그는 역사 서술 방식이나 문헌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여기서 나는 ‘사료’를 중점으로 보고자 한다.
사료는 내 이야기의 시놉시스
사료는 역사가가 사유할 수 있고, 사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보통 우리는 역사 시간에 사료를 볼 때, 이미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있는 상태에서 이를 바라보고 해석했다. 어떤 사료가 문제에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답을 찍었다.
예를 들어, 호우총에서 발견된 호우(청동 용기)의 문장에는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를 보아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대해 내정 간섭을 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배웠다. 맞는 말이지만, 과연 광개토대왕의 신라 내정 간섭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왜 광개토대왕이 신라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 호우에 문장이 새겨질 당시 신라 왕은 누구였는지, 왜 하필 청동 그릇에 글을 새겼는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제한된 역사 교육 시간 안에 이 물음을 가지는 것은 사치이다. 의문을 가짐과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모두 역사를 알아가고 싶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무정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길을 걸어가는 건 본인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지, 누가 대신 내 길을 걸어줄 수 없기에..
역사를 사유하고자 한다면 어떤 사료를 볼 때 사료가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첫째요, 더 나아가서는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료가 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존은 이를 “결을 거슬러 사료를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결은 ‘사료가 말하고 싶은 주제나 목적’을 의미하는데, 이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행위가 결을 거슬러 읽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한 마디로, 역사에 대한 나의 ‘관심’이 기반된 질문이다. 이 역사를 통해 내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질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유튜브로 황현필 선생님의 현대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황 선생님은 세계사보다는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당연한 소리로 치부하고 넘겼는데, 존의 책을 읽다 보니 황 선생님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역사로 내가 알고 싶은 것과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이를 기반으로 역사를 사유함이 필요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역사가들이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기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로 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생각을 하곤 했지만, 현시점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사유하고자 하는 목적 세팅인 듯하다. 단순히 역사에 대한 무조건적 관심으로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타파할 순 없을 것이다. 위의 관점을 되새겨 역사를 ‘외우는’ 내가 아닌 ‘사유하는’ 내가 익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