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8
엄마한테는 대학시절부터 꿈이 있었다. 온가족이 하나씩 악기를 다루어 같이 합주를 하는 모양을 그리곤 하셨다고 한다. 그에 반해 엄마도 다루는 악기가 없는걸 보면 그리 진지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쨋든 그 가족음악회 프로젝트라고 하자.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첫째아들이 8살이 되던 해에 피아노 학원을 보냈더랬다. 단언컨데 피아노 학원은 지루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만화주제가를 치곤 했는데, 그 모습은 누가봐도 그럴싸했다. 신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 홀로 좁은 방에서 음표만 끄적이고 있는건 싫었다. 나중에 느낀건, 그렇게 악보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뚱땅뚱땅 피아노 치는 시간보다 음표나 그리고 있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그당시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자세로 삶을 대하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다니고 있었다. 문제의 그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아노학원에 동갑내기 여자애가 다니고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얻어맞고 들어온 날이 있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고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아마 왜 맞고 왔냐고 화내는 아버지때문에 더 서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학원을 가지 않겠노라 말했고 반대급부로 검도장에 나가게 되었다. 태권도보다는 월 회비가 만원이 비쌌지만, 엄마는 검도가 멋있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나를 때리던 여자애는 나중에 5년이 지나서 사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고 나는 대답도 안하고 집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버렸다. 그녀는 내 피아니스트의 진로를 막아버렸으니까.
검도장은 재밌었다.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고, 일단 친구들이 다녀서 같이 검도장으로 학교 끝나고 달려가는게 재밌었다. 운동 자체는 힘들다곤 하지만 그땐 워낙 에너지가 많아서인지 힘든줄 몰랐다. 정문석 형, 안영준, 장성운, 이범희, 이정환 같은 친구들이 주 멤버로 같이 대회도 나가게 되었고 매번 누가 먼저랄거 없이 도장으로 뛰어가는게 방과 후 일과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운동을 지긋지긋하게 20년을 하게 될 줄 그땐 몰랐었다. 마냥 도장에서 옷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 모습이 좋았을 뿐이었다.
#썸네일 사진
Swallowtale 당시 Thunder 커버. zipcy가 그려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