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냥 노리기만 하다.
한산한 LA의 도심을 벗어나 라스베가스로 떠났다.
연말이라 그런지 출발하는 고속도로 안에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차선이 보이지 않았고, 평소에 운전하던 도로와 달리 미국의 고속도로는 옆 차선에서 빗물이 양옆으로 튀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5차선 고속도로 위에서 약 100km로 달리는 차들 속에 우리가 함께 달리고 있다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마저도 양옆의 거대한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두려움에 사시나무처럼 온몸이 떨렸다.
Waze라는 내비게이션 앱만을 믿고 달렸다. 감사하게도 속도 제안, 경찰의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이 서로 공유해 주었고, 초행길인 우리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의 날씨는 참 신기했다. 비가 폭풍우처럼 쏟아지다가도 어느 순간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이따금 공기 속에서 빗방울과 햇빛이 만나 아주 예쁜 무지개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동 운전 기능을 라스베가스에 갈 때만 알았더라도 훨씬 편하고 쉬웠을 텐데. 돌아오는 길에 이것저것 조작해 보니 오토 크루즈와 차선 유지 기능 덕분에 길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잠시나마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렌터카를 100달러 주고 하이브리드로 업그레이드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 알록달록하고 거대한 세븐 매직 마운틴스에도 들렀다. 정말 거대한 미술품임에도 불구하고, 웅장하고 끝없는 자연 속에 있으니 충분히 컸지만 상상 속 웅장함은 결국 미국의 대자연이 압도했다.
가는 길에 휴게소가 많이 없다고 해서 긴장하기도 했지만, 마을로 빠질 수 있는 길이 많아 피곤하다 싶으면 바로 주변 마을로 빠질 수 있었다. 신기했던 건 기름값이었다. 시골로 갈수록 비쌀 줄 알고 LA에서 가득 채워 왔는데, 자연 속으로 들어갈수록 기름값이 반값으로 줄어들었다. 일본은 희소할수록 기름값이 두 배 이상 뛰는데, 그 점이 꽤 신기했다. 또 차종에 따라 같은 일반 기름이라도 숫자로 종류가 나뉘어 있었다. 차를 빌릴 때 어떤 기름을 넣어야 하는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처음 보는 여러 종류에 헷갈려 차종을 검색한 뒤 주유했다.
슬슬 라스베가스에 다 와 갈 즈음, 2011년에 처음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려 15년 만의 라스베가스였다.
LA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 1시에 도착했으니 오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이 반나절 안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노려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배가 고파 랍스터로 유명한 핫앤쥬시로 향했다.
한국인이 많다고 했지만, 그만큼 믿고 먹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주문했는데 100달러가 나왔다. ‘어후, 이거 카지노에서 따면 되지!’
주차를 하니 주차비가 20달러였다. ’이거까지는 벌고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최소한의 소비를 하면서도 그것마저 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어디선가 솟아났다.
우선 벨라지오 분수도 보고,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호텔도 구경했다. 화장실이 급해 벨라지오 호텔에도 들어가 보고, 이제 슬슬 해가 저물고, 섹시한 언니들이 나와서 돌아다닐때 즈음, 돈을 투자해 볼 때가 됐다 싶었던 때가 아마 7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래, 100달러까지는!
그런 생각으로 둘러보니 다들 넣은 돈인지 번 돈인지 모를 돈을 2~3천 달러씩 무한히 돌리며 버튼만 누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멀리서 보면 어딘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우리도 20달러를 넣자마자 그들과 똑같은 입장이 되었다.
슬롯머신에 1달러를 넣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사라져 버린 기회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조금 안다는 블랙잭으로 배팅을 시작했다. 6달러부터 게임을 시작할 수 있어 두려웠지만, 시작하자 순식간에 20달러가 40달러로, 40달러가 3달러로… 또 20달러를 넣으니 그게 다시 40달러로, 그리고 60달러로. 돈이 가벼운 숫자가 되어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그 숫자에 따라 내려가면 내려간 대로, 올라가면 올라간 대로 도파민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처음 맛보는 중독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도 그들과 한몸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결국 총 43달러를 투자했고, 약 100달러까지 올라갔지만 처음부터 100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마음에 그 100달러를 다시 재투자했다. 그리고 결국엔 2달러가 우리의 도파민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밥값도, 주차값도 벌지 못한 채 약 40달러로 2시간을 즐겼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니, 내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이렇게 빠져들 줄은 몰랐지만 어느 쇼를 보는 것보다도 둘이서 40달러로 2시간 동안 최고의 도파민을 얻었다는 사실에 꽤 만족했다.
자, 이제 충분히 베가스를 즐겼다.
내일은 우리를 기다리는 대자연으로 향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