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계획은 무엇을 위해 세우나요?

미국여행이 바꿔준 나의 여행법

by 이나

한산한 연말의 LA.

차가 있고, 영업 여부와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우리는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기 전부터 이곳저곳을 공부해 지도에 핀으로 찍어둔 장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말 그대로 ‘도장 깨기’를 시작했다.


원래 나는 여행지를 미리 공부해서 가는 편이 아니었다. 9박을 여행해도 그냥 도심의 호스텔 9박을 통째로 예약해 두고 그날 그날 할 것을 정하는 여행을 선호했다. 미리 알아보는 일이 귀찮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핑계를 대자면 그곳을 향하는 목적 자체가 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 그때 느끼는 새로움의 감정이 좋았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는 목적이 생기는 순간, 여행은 발견이 아니라 ’할 일‘이 된다. 그저 목록을 지워 나가는 도장 깨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여행지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가야 할 곳은 늘어나고, 그럴수록 여행은 시간에 쫓기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대 초중반, 돈은 없었지만 시간이 많아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던 여행과 달리, 30대의 나는 달랐다. 물가 비싼 나라에서 펑펑 쓸 수 있는 여유도, 직장인의 한정된 휴가 안에서 즐겨야 하니, 그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번 여행만큼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약 한 달 동안 알아보고, 예약하고,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공부하지 않고 떠났던 여행이라 해도 결국 우리는 늘 구글 맵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냥 가보지 뭐”라는 말로 향한 곳이 예약이 필요하다며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더 그랬다.


이번 여행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미리 알아보고 떠난다고 해서 여행의 재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주변의 J분들께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예약을 해 두니 기다릴 일이 없었고, 갑작스레 찾아온 사람과 준비된 손님을 대하는 태도 또한 분명히 달랐다.


물론, 시간도 많고 돈도 많아진다면, 그때의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는, 9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뚜벅이가 아닌 차를 타고 ‘목적지’라는 이름의 점들을 잇는 여행. 물가 비싼 나라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대의 가성비였다.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


그렇게 우리는 영업시간까지는 미처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계획에 있어서는 초보여행자였지만, 정해둔 목적지를 따라 이동하며 여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무 많이 공부한 탓일까.

우리는 LA–Las Vegas–Canyon 서클을 9일 만에 일주하겠다는, 다소 무모하고도 방대한 계획을 세워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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