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남매 하나 <비 오는 퀴어문화 축제>
2022년 여름의 장마, 아니 우기(雨期)
나와 아들은 그 우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이제 한국도 우기(雨期)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날씨가 변했다는 기사를 봤다. 한국은 변화가 빠르고 사람들도 그에 따라 금세 적응 하는 편이지만 이런 날씨에 까지 서둘러 적응해야 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일반사람들 속에 섞여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상을 살다가 한국에 방문해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니 사소한 일을 나누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이 순간 습한 날씨도 인구변화도 없던 일인 듯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됐던 십수 년 전의 기분을 만끽할 뿐이었다. 친구 커플이 서로 함께 한지도 20년이 됐다. 여느 레즈비언커플이 그렇듯 출퇴근을 챙기고 휴가를 함께 보내고 같은 집에 살지만 시댁을 시댁이라 부르지 않고 왕래는 없는 편인. 그들의 일상 속을 매년 휴가지처럼 꼬박꼬박 방문하고 있다. 오색찬란한 장난감, 어린이용 전집, 가구의 단단한 모서리에 아이의 머리를 보호하는 패드가 붙어 있지 않은 어른들만의 집에서 생경한 단순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 집처럼 늘 한결같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화목함의 비결을 관찰한다. 농담과 생활습관 같이 표면적인 요소들에 존중과 인내가 스며있는 공간을 어슬렁거린다. 훗날 그들에게 결혼은 형식적인 절차가 될 것이다.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시면서 그 집 거실 한가운데에 가로로 누웠다. 염치없는 내게 고양이가 다가온다. 내가 미국에 정착하며 가족을 꾸려나가는 동안 친구들은 속속 알만한 직장에서 높은 직책의 명함을 갖게 됐다. 성실한 장수커플답게 양도세가 없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혜택은 없는 1 가구 2 주택이 마련됐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온스 잔을 이용해 비율이 맞춰진 재료들이 셰이커 속으로 들어갔다. 셰이커가 열리고 곧이어 길게 꼬인 칵테일 스푼을 따라 잔 속의 두툼한 정육면체 얼음 위로 흐르는 술이 반짝였다. “칵테일 만들 때 잔의 두께도 고려해야 돼. 이 칵테일 핀(cocktail pin)도 종류가 다양하고.” 체리가 꽂힌 스틱은 날렵하고 흠없이 다듬어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신경 써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두 명의 아이가 생긴 내가 두 마리의 고양이를 바라본다. 20년 커플의 성실함의 증거인 양도세 없는 1 가구 2 주택 중 1 주택 거실에 널브러져서. 도를 넘어선 습도의 7월, 시차에 맹한 정신, 배달된 최신유행의 아름다운 토속음식, 날렵한 칵테일 핀. 결혼인 듯 결혼 아닌 결혼 같은 생활을 하는 친구의 바지런한 손과 가지런한 식탁. 내게 생경한 모든 변화가 친구의 새로운 믹솔로지 스킬에 힘입은 듯 한 공간에 섞여 있었다.
“종합예술이지. “
친구가 덧붙였다.
2022년 한국의 우기(雨期). 아들과 나는 운 좋게 서울퀴어문화 축제를 구경할 수 있게 됐다. 7월로 미뤄진 행사 덕분이었다. 친구들과 여러 부스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무지개색 물건들을 구입하고 나니 아이의 이른 취침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잠시 앉았다 집으로 돌어갈 요량으로 근처에 휴식공간을 찾아 파이낸스센터의 커피빈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말로만 듣던 풍경이 펼쳐졌다. 반대시위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네’라고 잠시 생각했던 불과 몇 분 전의 내가 순식간에 나를 부정하는 인파에 압도되었다. 서울광장 바깥쪽 대로변에는 광장 안쪽의 인파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의 이유를 성토하고 있었다. 화단에 걸터앉은 어르신들이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더운 날씨에 붉은 티셔츠와 긴 군복바지를 입고 북을 든 소년소녀와 부모님도 보인다. 휴식이 필요한 듯 지친 기색이었다. 쩌렁쩌렁한 연설자의 목소리가 거리 구석구석을 메웠다. 목사님 같기도 하고 어느 정당의 지지자 같기도 한 내용이 섞여있었다. 어느 어르신이 파란색 부채를 나눠 주셨다. 부채 위에는 ‘차별금지법 동성애퀴어축제 반대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지개 깃발이 꽂혀있는 유모차 속 아들이 파란 부채를 들고 있다. 아이는 왜 하필 파란색을 좋아할까.
나는 멕시코 여행 중에 마트에서 급하게 구입한 유모차에 짐과 아이를 의지하고 있었다. 아들은 이미 지쳐서 걸어갈 여력이 없다. 디자인이 엉망이지만 가볍고 성능이 좋은 핑크빛의 유모차. 세련된, 최신의, 혹은 평범함 같은 단어와 거리가 한 참 먼 디자인의 유모차를 이번 여행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겠다는 다짐으로 구입했지만 쓰임이 많아 버릴 수가 없었다. 판매되는 순간부터 짧은 운명을 감지한 유모차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자연스럽게 입국해 나의 비위를 맞추며 생을 연장하다가 결국 한국땅까지 밟으며 희한한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모차는 양손에 각각 무지개 깃발과 그에 반대하는 부채를 든 아이를 군말 없이 안고 반대시위가 한창인 거리의 보도블록을 따라 움직였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행렬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쉼터가 오직 이 길 끝에만 있다. 이 길 밖에 다른 길도 없다. 시청 앞 광장에서 받은 무지개 깃발, 멕시코에서 산 핑크빛 유모차, 아무리 반대해도 다시 뱃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레즈비언이 낳은 아이와 그 작은 손에 들린 파란색 부채 속 문구 ‘차별금지법 동성애퀴어축제 반대합니다 ‘.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보도블록의 요철을 따라 흔들리며 앞서갔다. 훗날 어르신들에게 이곳은 사탄일 줄로 오해했던 손자 손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종합예술이네. “
친구가 내밀던 칵테일잔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비를 피해 광장 쪽 지하철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로 광장 앞 횡단보도는 인산인해였다. 몇 분 사이 비 때문에 순식간에 흐트러진 아이와 나의 매무새를 정리하고 지하철에 탔다. 시청역의 승객이 전부였던 지하철 안은 시청역과 멀어질수록 색깔이 희미해졌다. 반대하는 어르신들과 알록달록한 장식의 퀴어들이 정차와 하차를 반복할 때마다 새로 승차한 사람들과 섞였다가 빠져나가며 희석됐다. 이렇게 다시 알 수 없는 일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밀스럽게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을 키워오는 사람들과, 이렇든 저렇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사람들, 정말로 이웃을 아낄지도 모르는 사람들, 자신을 퀴어로 정의 내리거나, 아니거나, 의문인 사람들이 뒤섞여 모호한 일상 속으로.
집 앞 지하철 역에 도착해 편의점에 들렀다.
"아빠가 외국사람인가 봐요. 너무 예쁘게 생겼다."
"아니요. 저희는 동성 커플이라서 엄마가 둘이에요. 제가 낳았고요."
"어머 어떻게..?"
"미국은 요새 이런 게 잘 되어 있어요."
두리뭉실한 대답을 하니 사장님이 갑자기 커피를 사주셨다.
"우리 딸이 캐나다에 있는데 생각이 많이 나네. 이거 마셔요. 그리고 응원해요!"
생각보다 진심으로 이웃을 아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기에 실수로 들고나갔다가 번져버린 수채화를 말리고 보니 꽤 그럴싸한 그림이 된다면 이런 기분일 텐데. 이런 씁쓸한 날을 어떻게 회고할까.
아마도
"종합예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