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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an 10. 2019

면접 아니고 미팅이에요


이력서를 내고 2주 정도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OOOO입니다^^
이력서 보고 연락드려요.
괜찮으시면 미팅을 가지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면접이 아니라 미팅이란다. 이야! 역시 스타트업.


회사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이전 회사에서 들어간 지 한 달만에 거짓말처럼 대리와 팀장이 줄줄이 퇴사하고 사장의 대노로 부서가 공중분해된 후 나 또한 퇴사 수순을 밟은 후 두어 달. 갖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다.


머지않은 미래, 나의 일을 하며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하다, 아는 것도 없다
일단은 빡세게 배워야겠다


라는 결론에 이른 나는 취업포털을 뒤적이며 하반기 공채를 준비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이 회사의 채용공고는 독특했다. 대체 누가 요즘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하나 할 정도로 투박한 디자인이었지만, 창업이라는 꿈에 도전하고 싶은 야망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메시지는 뭔지 모를 끓어오름을 느끼게 했다. 기회만 된다면 스타트업에서 직접 일하며 그 생리를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담당업무는 디지털 마케팅 영상 및 랜딩페이지 기획 영업/홍보/마케팅(읭?). 뭔가 모오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는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모집 분야명이 '마케팅 전문가'라는 부분이 좀 걸리긴 했으나 뭐 어떤가! 일단 넣어는 보는 거지. 검색 포털에 회사명을 검색해보니 이미 시리즈 A 투자도 마쳤고, 각종 수상도 한 회사다. 제품도 혁신적인 것 같고 출시도 임박했다고 한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는 분명 '희망편'이다!!

절호의 찬스다!라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도서구입비 지원, 사내 외국어 강좌, 교육비 지원, 자기 계발비 지원, 호칭/서열파괴, 인재육성 중시' 등의 회사가 자랑하는 복리후생은 에이 이런데가 어딨어하는 의심과 동시에 기대를 갖게 했다. 이것이 바로 이력서를 제출하기까지의 배경이다.


다시 돌아와서,

'미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특별했다.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평가당하는 자리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Fit을 맞추어보는 시간. 당연히 평가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면접이 아닌 미팅이라는 그 단어는 만나기도 전에 묘한 호감을 갖게 했다. 흔쾌히 답장을 보내고 시간을 조율했다. 금요일 오전 11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만남 전 날, 목요일. 태풍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비바람이 한참 불었다. 이거 이래서야 내일 제대로 갈 수나 있을까, 그 동네 비 많이 오면 자주 침수되는 지역인데 하는 걱정을 안고 잠들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금요일 오전 날씨는 잠잠해져 갔고, 이거 운명인가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안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사무실 주소라고 찾아갔는데 무슨 무슨 펍만이 대문짝만 하게 간판을 내걸고 있는 건물을 보며 이거 신종 사기인가 싶었다.


침침..벗뜨 CoZy...

어쨌든 그 건물이 맞았다. 어찌어찌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은 내가 '스타트업'하면 꿈꾸고 있던 그런 모습이었다. 노출형 천장에 레일 조명(물론 노란 조명!!!), 화이트보드에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의를 잔뜩 했구나 싶은 끄적임, 벽면에 휘향 찬란한 색으로 붙어있는 포스트잇은 '그래 바로 이곳이야!' 하는 내적 외침을 불러일으켰다. 미팅은 간단한 회사 소개로 시작되었다. 회사의 비전, 시작하게 된 계기, 기술력 등 이미 이런저런 검색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듣는 느낌은 또 새로웠다. 이후 대표의 질문이 이어졌다.


졸업하고 이러이러한 활동을 했는데 뭔지 설명해달라

장사했다고 하는데 마케팅이나 홍보 어떻게 했냐

왜 대기업 준비 안 하고 스타트업 오려하느냐

본사 제품 10대 주고 2주 안에 팔아오라고 하면 어디에서 어떻게 팔겠느냐

본사 제품을 어떤 채널에서 가장 팔고 싶냐, 이유는 뭐냐


등등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질문들까지 포함하면 10여 개 정도 되는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했던 것 같다. 대표는 나의 답변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화기애애한 우리의 미팅은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연봉과 근무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대표 사실 우리 회사 굉장히 빡셉니다. 좀 늦게까지 일하는데 괜찮겠어요?

무너 하하 차 끊겨서 택시 타고 가야 할 정도는 아니겠죠?

대표 그 정도는 아닙니다. 월~목 오후 10시. 금요일은 정시퇴근. 주말은 일 절대 안 합니다.

무너 (머시라...) 하하하 스타트업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죠. 좋습니다.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자는 대표의 말에 내가 더 당황하여 아니 다른 사람 면접 더 안 보셔도 괜찮으신 겁니까?라고 반문한 기억이 난다. 대표는 무너 씨가 오니까 어두웠던 하늘에 해가 나오네! 하며 악수를 청했고, 그 손을 맞잡으며 '아 역시 이 회사와 나는 운명적으로 만날 인연이었어!' 하는 생각은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이로써 나의 알 수 없는 스타트업 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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