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첫 눈이 기억하는 것

by 시더로즈











*천 년 전, 티베트 고원*


라마승 덴진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 정상에서 마지막 만다라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서리가 공중에 복잡하고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을 새겨나갔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그의 의지에 따라 춤추며, 거대한 만다라의 일부가 되어갔다.


“이것으로… 봉인이 완성된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만다라가 완성되는 순간, 산 전체가 푸른 빛으로 빛났다. 그 빛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다른 여섯 개의 빛과 만나 거대한 결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덴진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힘을 모두 쏟아낸 그의 육신은 서서히 얼어가기 시작했다.


“괜찮다… 언젠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의 마지막 한 숨과 함께,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영혼은 첫눈 속에 스며들어 천 년의 잠에 빠져들었다.




*현재, 서울*


“이상하다… 분명 어제까지 영상 5도였는데.”


강설은 기숙사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11월 중순, 서울에 벌써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의 눈이 아니었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유독 크고 투명했으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규칙적인 패턴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설아, 너도 이 눈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룸메이트 유진이 옆에서 말했지만, 강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눈송이들이 그리는 기묘한 문양에 빠져있었다.


‘저건… 뭔가 익숙한 모양이야.’


기억 저편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어릴 적 할머니가 보여주셨던 오래된 책의 그림 같기도 하고, 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강설은 책상에 손을 짚으며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그 순간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게 뭐야?”


투명한 서리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나와 공중에서 작은 원을 그렸다. 그 원 안에는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이 저절로 새겨지고 있었다. 마치 창밖의 눈송이들이 그리는 패턴과 똑같은 모양으로.


“설아! 너 괜찮아?”


유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강설은 재빨리 손을 뒤로 숨겼다. 다행히 서리로 만들어진 문양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아, 응… 괜찮아. 그냥 현기증이 좀…”


“얼굴이 새하얗네.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니야?”


유진이 걱정스럽게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강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설아, 너 지금 눈 내리는 거 보고 있지?


할머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진지했다.


“네, 보고 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오늘 밤 9시에 종로 탑골공원으로 나와. 혼자서.


“네? 갑자기 왜요?”


설명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설아… 네 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강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놀라지 마라. 때가 된 거다. 네가 태어날 때부터 기다려온 그 날이.


“할머니,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밤에 모든 걸 설명해 줄게. 그리고 설아,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그 힘을 쓰면 안 된다. 아직은 위험해.


전화가 끊어졌다. 강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이상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송이들이 그리는 문양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려는 것처럼.




*그날 밤, 탑골공원*


오후 9시 정각, 강설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공원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평소라면 산책하는 사람들이나 운동하는 이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오늘은 마치 세상에 자신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할머니?”


그때 공원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파란빛이 아련히 빛나고 있었다. 강설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빛의 근원지에는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자상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그분의 손에서 강설과 똑같은 서리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서리는 공중에서 거대하고 복잡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이제야 왔구나, 설아.”


할머니가 돌아보았다. 그분의 눈이 파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네 차례가 온 거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계승자여.”


할머니의 손에서 완성된 만다라가 천천히 강설을 향해 다가왔다. 그 순간 강설의 머릿속에 천 년 전의 기억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설산의 라마승 덴진. 일곱 개의 성역. 혼돈의 봉인. 그리고… 다가오는 위기.


“이제 시작이다, 강설아.”


할머니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울려 퍼졌다.









“세상을 구할 준비가 되었느냐?”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