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
1화: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날 (그리고 가장 행복한 날)
세상에, 오늘은 정말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27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유리 상자 안에서 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했다. 둘째 형 찌코는 맨날 내 꼬리를 물어뜯으려 하고, 셋째 누나 포포는 나보다 먼저 먹이를 다 차지해버리고…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외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이 열리더니 거대한 손이 내려왔다!
“으아악악악!”
나는 본능적으로 다른 형제들 사이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손가락들은 마치 나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내 몸을 감쌌다.
“안 돼! 나를 먹으려고 하는 거야!”
온몸이 땀에 젖었다. 아니, 햄스터도 땀을 흘리나? 어쨌든 정말 무서웠다. 투명한 작은 상자에 혼자 갇혀버렸는데, 밖으로는 형제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루미야! 무사히 돌아와!” 막내 누나 콩콩이가 울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거인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상자 안에서 덜덜 떨면서 생각했다. ‘아, 이제 내 인생 끝이구나. 햄스터 요리가 되는 건가? 아니면 실험용 마우스가 되는 건가?’
그런데…
상자 밖으로 거대한 얼굴이 나타났는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예뻤다? 눈이 크고 반짝반짝했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안녕, 작은 친구야. 무서웠지?”
어? 목소리가 정말 부드럽다. 마치 엄마 목소리 같았다. 이 거인은 다른 거인들과 뭔가 달랐다. 보통 애완동물 가게에 오는 거인들은 시끄럽게 떠들거나 유리를 툭툭 치면서 우리를 구경했는데, 이 거인은 조용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마. 이제 너에게 정말 좋은 집을 선물해줄게.”
좋은 집이라고? 설마 감옥은 아니겠지?
거인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투명한 상자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계속 바뀌었다. 벽, 문, 계단…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와아아아악!”
내 작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이건 집이 아니라 궁전이었다!
2층짜리 플라스틱 집이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1층에는 넓은 거실 같은 공간이 있고, 2층에는 아늑한 침실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구불구불한 터널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저기, 저 빙글빙글 도는 건 뭐야?”
거인이 내 시선을 따라 쳐다보더니 웃었다.
“아, 그건 운동 바퀴야. 햄스터들이 운동할 때 쓰는 거지.”
운동 바퀴라고? 신기하다! 나는 애완동물 가게에서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었거든.
거인이 상자를 열고 나를 조심스럽게 새 집 안으로 옮겨주었다. 발밑에 깔린 톱밥이 정말 부드러웠다. 코를 킁킁거려보니 소나무 냄새가 났다. 애완동물 가게의 지저분한 신문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름은… 뭘로 할까?”
거인이 턱에 손을 올리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아, 거인도 귀여울 수 있구나.
“루미 어때? 작고 예뻐서.”
루미라고? 음…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마음에 든다! 애완동물 가게에서는 그냥 “7번”이라고 불렸거든. 진짜 이름이 생긴 건 처음이야!
“루미… 루미…”
혼자 중얼거려보니 어감이 좋다. 부르기도 쉽고.
그때 거인이 작은 그릇을 가져왔다. 뭔가 먹을 것을 넣어주는 모양이다. 냄새를 킁킁 맡아보니… 세상에!
“이건 뭐야? 천국의 냄새인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망설이지 않고 한 입 베어물었다.
“!!!!”
이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씹을수록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먹던 딱딱한 펠릿 사료와는 비교도 안 됐다.
“맛있지? 해바라기씨야. 앞으로 루미가 좋아하는 간식이 될 거야.”
해바라기씨! 이름도 예쁘다. 나는 급하게 볼주머니에 몇 개를 저장했다. 나중에 배고플 때 먹으려고.
거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축하는구나? 정말 똑똑해.”
응? 내가 뭘 했다고? 아, 볼주머니에 씨앗 저장하는 걸 보고 하는 말인가? 거인들은 참 이상해. 이건 그냥 본능인데.
그런데 갑자기 거인의 손가락이 내 머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움츠러들었다. 설마 이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거인의 손가락은 정말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엄마가 어린 새끼를 돌보듯이.
“어…?”
이상했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털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무서워하지 마, 루미. 이제 우리가 가족이야.”
가족이라고?
나는 거인의 얼굴을 똑똑히 들여다봤다.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나를 향한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가족…”
그 단어가 내 가슴 속에서 따뜻하게 퍼져나갔다. 애완동물 가게에서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구경만 하고 갔는데, 이 거인은 진짜로 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작은 앞발로 거인의 손가락을 살짝 만져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사였다.
“고마워, 거인… 아니, 가족.”
거인이 환하게 웃었다.
“잘 자, 루미. 내일부터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날 밤, 나는 푹신한 솜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무서워 떨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니. 인생이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
창문 밖으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로운 집, 새로운 이름, 새로운 가족… 모든 게 새롭고 설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나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내일이 벌써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