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장미
프롤로그 - 씨앗
장미는 붉어야 한다고 세상이 말했다.
노란 장미, 흰 장미, 분홍 장미까지는 용납되었다. 하지만 파란 장미는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색. 존재해서는 안 되는 꿈.
어떤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 묻혔다. 그 씨앗은 파란 꿈을 꾸고 있었다. 주변의 붉은 장미 씨앗들이 속삭였다.
“너는 이상해. 우리처럼 붉어져야 해.”
하지만 파란 씨앗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파란색이어야 하는지, 아직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씨앗이 싹을 틔웠다. 정원사가 다가왔다. 그는 파란빛이 도는 어린 싹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장미가 아니야. 잡초 같은데?”
그의 손이 뻗어졌다. 뽑으려는 손.
그때였다.
바람이 불었다. 정원사의 모자가 날아갔고, 그는 황급히 모자를 쫓아갔다. 어린 싹은 살아남았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지키고 있었던 걸까?
싹은 자라기 시작했다. 붉은 장미들 사이에서 유난히 가느다랗고, 유난히 다른 빛깔로.
“너는 왜 우리랑 다르니?”
붉은 장미들이 물었다.
어린 싹은 대답했다.
“나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나여야만 하는 것 같아.”
밤이 되었다.
달빛 아래, 어린 싹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특정한 패턴을 그리며 빛나고 있었다. 언어가 아니었지만, 싹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해라. 너는 약속했다.”
무슨 약속이었을까?
꿈속에서 싹은 보았다.
수정으로 지어진 도시.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존재가 투명하게 빛나는 곳. 그곳에서 파란 장미는 가장 신성한 꽃이었다. 순수한 사랑의 상징. 진실 그 자체의 현현.
하지만 그 세계는 사라졌다.
왜?
꿈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너무 순수했다. 세상이 변했지만, 우리는 변할 수 없었다. 거짓을 배울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위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했다. 사라지는 것을. 하지만 몇몇은 약속했다. 언젠가 돌아가겠다고. 사랑을 지키겠다고.”
“너는 그 약속을 기억하는 자다.”
어린 싹은 눈을 떴다. 아침 이슬이 잎사귀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왔다.”
처음으로, 자신이 왜 파란색이어야 하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