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뿌리 (Roots)

거부의시간

by 시더로즈

1화 - 뿌리 (Roots) - 거부의 시간

1.

아이의 이름은 ‘서린’이었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맑게 갠 하늘처럼, 서리처럼 순수하게 자라라”는 의미였다. 어머니는 알지 못했다. 그 순수함이 아이를 얼마나 아프게 할지.

서린이가 처음 토한 건 일곱 살 때였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담임선생님은 박 선생님이었다. 젊고 예쁜 선생님. 아이들은 모두 박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날 박 선생님은 서린이의 그림을 칭찬했다.

“서린아, 정말 잘 그렸구나! 우리 서린이가 최고야!”

목소리는 밝았다. 미소도 환했다. 하지만 서린이는 느꼈다.

선생님의 눈이 웃지 않는다는 것을.

선생님은 서린이의 그림을 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형편없네. 하지만 칭찬해줘야지. 자존감 교육이라잖아.’

서린이는 그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느꼈다. 몸으로.

먼저 속이 메스꺼웠다.

그다음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구역질.

“으억—”

교실 바닥에 토사물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이 놀라 달려왔다. 보건실로 옮겨졌다.

“아침에 뭐 먹었니? 상한 거 먹었어?”

서린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거짓말이 메스꺼웠어요’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

그날 이후로 자주 토했다.

어머니가 거짓말로 위로할 때.

“괜찮아, 엄마가 항상 네 편이야.”

(하지만 엄마는 아빠 편이었다. 서린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가 술 취해 말할 때.

“아빠는 너희들 때문에 산다.”

(하지만 아빠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친구들이 겉으로만 친절할 때.

“서린아, 우리 친구지?”

(하지만 뒤에서는 서린이를 이상하다고 수근거렸다.)

병원을 전전했다.

소아청소년과, 소화기내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말했다.

“기질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심인성 구토로 보입니다.”

“예민한 성격이 원인일 수 있어요.”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합니다.”

약을 먹었다. 소화제, 제산제, 항불안제.

몸의 증상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였다.

세상은 여전히 거짓으로 가득했고,

서린이의 몸은 여전히 정직했다.

3.

열 살이 되었을 때, 서린이는 전학을 갔다.

이전 학교에서 ‘토하는 애’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새 출발. 어머니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잘될 거야. 새로운 친구들 사귀고, 선생님도 좋은 분이시대.”

서린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학교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을.

첫날, 담임 선생님이 소개했다.

“얘들아, 새 친구 서린이야. 잘 지내자!”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서린이는 그들의 눈을 보았다.

호기심, 무관심, 경계심, 그리고… 이미 결정된 서열.

쉬는 시간, 여자아이 몇 명이 다가왔다.

“야, 너 어디서 왔어?”

“공부 잘해?”

“뭐 잘하는 거 있어?”

질문들이 쏟아졌다. 서린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냥… 평범해요.”

여자아이들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서린이는 느꼈다.

‘쟤 재미없네.’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데.’

‘의무적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대답이 시시해.’

속이 메스꺼웠다.

참았다. 필사적으로 참았다.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에 대고 토했다.

4.

점심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급식실. 수백 명의 아이들. 웃음소리, 대화 소리, 식판 부딪치는 소리.

하지만 서린이에게 들리는 건 소리가 아니었다.

감정들.

가식적인 친절.

억지로 참는 짜증.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질투.

착한 척하지만 사실은 무시하는 마음.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입에 넣으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몸이 거부했다.

“서린아, 왜 안 먹어? 편식하면 안 돼.”

선생님이 지적했다.

서린이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설명하지?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공간 전체가 거짓으로 가득해서 삼킬 수 없다고?’

결국 조금만 먹고 남겼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급식실 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서린이는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5.

밤이 오면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방 안, 혼자.

어둠 속에서 서린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이 보였다.

왜인지 모르게, 별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저기가 내 집인가?”

중얼거렸다.

지구가 집 같지 않았다. 늘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날 밤, 서린이는 꿈을 꾸었다.

수정으로 지어진 도시.

투명하게 빛나는 건물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통했다.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거짓말이 불가능한 세계.

누군가 서린이에게 다가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힘들지?”

“응…”

“당연해.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나는 어디 사람이야?”

“레무리아. 사랑 그 자체였던 대륙. 우리는 거짓을 말할 수 없어서 멸망했어. 하지만 너는 약속했잖아. 돌아가겠다고. 사랑을 지키겠다고.”

“나는…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데…”

“기억은 곧 돌아올 거야. 지금은 견뎌. 네가 왜 그렇게 아픈지, 이유가 있어.”

꿈에서 깨어났을 때, 베개가 눈물로 젖어 있었다.

6.

중학교에 올라갔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더 잔인했다. 더 교묘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 뒤에서는 칼을 꽂는 법을 배웠다.

서린이는 점점 투명해졌다.

일부러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말을 최소화했다.

웃음을 억지로 지었다.

“나도 평범한 척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억지로 친구들과 어울리면, 집에 와서 토했다.

거짓된 웃음을 지으면, 밤에 두통이 왔다.

착한 척, 괜찮은 척하면, 온몸이 아팠다.

어머니가 물었다.

“서린아, 너 요즘 왜 그러니? 친구 없어?”

“…있어요.”

거짓말이었다. 서린이에게 진짜 친구는 없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좀만 밝게 굴면,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왜 그렇게 어둡게 굴어?”

서린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하지? 밝은 척하는 게 거짓말이라서, 몸이 아프다고?’

7.

열다섯 살, 어느 날.

서린이는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자살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난간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거지?”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옆에 앉았다.

검은 눈으로 서린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했다.

“너도 혼자니?”

까마귀가 머리를 갸웃했다.

서린이는 웃었다. 오랜만에 진짜 웃음이었다.

“나는 서린이야. 너는?”

까마귀가 울었다. “까악—”

“그럼 너는 ‘까악’이네.”

둘은 한참을 함께 앉아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서린이는 느꼈다.

이 까마귀는 자신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함께 있어준다는 것을.

“고마워.”

서린이가 속삭였다.

까마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자주 나타났다.

학교 가는 길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치 지키는 것처럼.

8.

그날 밤, 서린이는 우연히 고서점 앞을 지나갔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발걸음이 멈췄다.

왜인지 모르게,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 냄새, 오래된 종이 냄새.

서점 주인은 노인이었다. 안경 너머로 서린이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어서 오렴. 기다리고 있었단다.”

“…네?”

“네가 찾는 책은 저쪽 구석에 있어.”

서린이는 이끌리듯 걸어갔다.

먼지 쌓인 책장 맨 아래.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 레무리아의 유산』

손이 떨렸다.

책을 꺼내 펼쳤다.

무작위로 펼쳐진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레무리아인들은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몸 자체가 진실의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위선도, 사소한 꾸밈도, 그들의 세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것은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저주였다.

세상이 진화하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적당한 거짓이 필요해졌다.

사회적 가면, 전략적 침묵, 보호를 위한 위장.

하지만 레무리아인들은 배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했다.

사라지는 것을.

하지만 멸망 직전, 가장 순수한 영혼들이 모여 서약했다.

’우리는 언젠가 돌아갈 것이다.

세상이 다시 준비되었을 때.

그리고 우리가 지킨 사랑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시간을 건너뛰며 태어난다.

매 시대마다, 소수가.

그들은 알아볼 수 있다.

거짓을 견디지 못하는 몸.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감각.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듯한 고독.

그들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억하는 자들이다.”

서린이는 책을 든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읽었다.

모든 페이지가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억하는 자여,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의 몸이 거부하는 것들,

그것들이 바로 당신이 변화시켜야 할 것들입니다.

당신은 치유자로 왔습니다.

먼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다음 다른 이들을 도우십시오.

무의식이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신호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날 밤, 서린이는 처음으로 편히 잠들었다.

꿈속에서 수정 도시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환영해, 서린.

이제 깨어날 시간이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