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꽃봉오리 (Bud)

방향을 찾다

by 시더로즈









1.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주변 모든 아이들이 입시에 몰두했다. 학원을 다니고,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에 일희일비했다.

하지만 서린이는 달랐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선생님들은 말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어."

하지만 서린이는 '좋은 대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세상이 정한 기준. 남들이 부러워하는 간판.

그게 정말 자신에게 좋은 것일까?

어느 날 진로상담 시간.

담임선생님이 물었다.

"서린아, 너는 뭐가 되고 싶니?"

서린이는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이요."

선생님이 눈을 반짝였다.

"오, 의대 가려고? 성적이 좀 더 올라야 할 텐데..."

"아니요. 의대는 아니고요..."

"그럼 간호대? 물리치료? 작업치료?"

"음... 좀 다른데요.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영혼도 함께 치유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영혼? 그게... 직업이 되니?"

서린이는 입을 다물었다.

'설명해봤자 이해 못 하겠지.'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서린아,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영혼 치유 같은 건... 취미로 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지."

"제대로 된 직업이요?"

"그래. 안정적인 거. 의사, 간호사, 공무원, 회사원..."

서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안정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왜 태어났는지가 중요하지.'

2.

그날 밤, 서린이는 명상을 했다.

이솔 선생님께 배운 방법.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고, 내면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파란 장미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져 있었다.

서린이가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정원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녕, 나."

서린이가 파란 장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서린."

"나는... 뭘 해야 할까? 진짜로."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아니야. 모르겠어. 선생님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래. 하지만 난 현실적인 게 뭔지 모르겠어."

파란 장미가 부드럽게 빛났다.

"현실적이라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는 것. 다른 하나는 네 본질에 맞추는 것.

세상은 첫 번째를 현실적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진짜 현실적인 건 두 번째야.

왜냐하면 네 본질을 거스르는 삶은, 결국 지속 불가능하니까."

서린이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럼... 내 본질은 뭔데?"

"사랑을 지키는 것. 진실을 구별하는 것.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치유하는 것."

"그런데 그게 어떻게 직업이 돼?"

"무의식에게 물어봐. 무의식은 이미 길을 알고 있어."

서린이는 더 깊이 들어갔다.

의식의 층을 하나씩 내려갔다.

생각의 층, 감정의 층, 기억의 층.

그리고 그 아래.

무의식의 바다.

어둡고 넓고 깊은.

"무의식아... 나한테 보여줘. 내가 가야 할 길."

3.

순간, 비전이 펼쳐졌다.

서린이는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영화처럼 선명한 게 아니었다.

파편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

첫 번째 이미지:

서린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는 복잡한 다이어그램. "감정 추적 알고리즘"이라고 적혀 있다.

두 번째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화면에는 정원 이미지. 사람들이 웃고 있다. 치유되고 있다.

세 번째 이미지:

큰 무대. 서린이가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이미지:

신문 헤드라인. "헬스케어 유니콘 탄생" 서린이의 얼굴이 있다.

다섯 번째 이미지:

조용한 호숫가. 서린이가 늙어 있다. 평화롭게 웃고 있다.

여섯 번째 이미지:

재단 건물. 간판에 적혀 있다. "파란장미 재단"

비전이 사라졌다.

서린이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온몸이 떨렸다.

"이게... 내 미래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슴이 뛰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헬스케어... 기술... 감정..."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4.

다음 날, 서린이는 도서관에 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시작했다.

"감정 추적 기술" "디지털 헬스케어" "웰니스 앱" "정신건강 스타트업"

화면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명상 앱, 수면 앱, 감정 일기 앱...

하지만 서린이가 본 비전과는 뭔가 달랐다.

'이건 아니야. 내가 본 건 더... 깊은 거였어.'

그때, 우연히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를 위한 맞춤형 케어의 필요성』

서린이는 클릭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HSP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케어는 일반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HSP를 위한 특화된 솔루션이 필요하다."

'이거야!'

서린이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HSP에 대한 논문, 책, 기사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확신이 들었다.

'나는 HSP야.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20%나 돼.'

'우리는 이상한 게 아니야. 단지 다른 거야.'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치유 방법이 필요해.'

시계를 보니 어느새 5시간이 지나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5.

그날 밤, 서린이는 노트를 펼쳤다.

무의식이 보여준 비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

HSP를 위한 디지털 케어 플랫폼.

단순한 명상 앱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추적하고, 치유하는 통합 솔루션.

왜냐하면:

HSP는 감정을 더 깊이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세상은 우리에게 '덜 느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답은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


어떻게:

감정 추적: 하루 동안 느낀 감정들을 기록


패턴 분석: AI가 감정 패턴을 찾아줌


맞춤형 케어: 개인에게 맞는 치유 방법 제안


커뮤니티: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정원의 은유를 사용한다


감정을 꽃으로, 자기돌봄을 가드닝으로


아름답게, 치유적으로"


서린이는 펜을 멈추고 자신이 쓴 글을 바라보았다.

"이게... 가능할까?"

의심이 들었다.

고등학생인 자신이. 코딩도 할 줄 모르는. 사업 경험도 없는.

하지만 그때, 책상 위 시계를 보았다.

11시 11분.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응, 신호 받았어. 가능하다는 거지?"

6.

다음 날, 서린이는 용기를 내서 이솔 선생님께 연락했다.

워크숍 이후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던 터였다.

"선생님, 상담 가능하세요?"

"물론이죠, 서린아. 무슨 일이에요?"

카페에서 만났다.

서린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다.

HSP를 위한 디지털 케어 플랫폼. 감정의 정원. 치유의 기술.

이솔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서린이가 다 말하고 나자, 한참을 침묵했다.

서린이는 불안했다.

'역시 말도 안 되는 얘기였나...'

그런데 이솔이 입을 열었다.

"서린아, 이거 알아요?"

"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사명을 발견한 거예요."

서린이의 눈이 커졌다.

"사명이요?"

"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평생 그걸 모르고 살아요. 당신은 열여덟 살에 발견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솔이 미소 지었다.

"몰라도 돼요. 무의식이 인도할 거예요. 한 걸음씩 가면, 다음 걸음이 보여요."

"정말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명상 강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어요.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죠. 하지만 한 걸음씩 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서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 걸음은 뭘까요?"

"배우는 거예요. 당신이 모르는 것들을."

"뭘 배워야 해요?"

이솔이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기술.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려면 코딩을 알아야죠. 둘째, 비즈니스. 스타트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셋째, 심리학. HSP와 감정에 대한 학문적 이해.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이요?"

"네. 당신이 먼저 치유되어야 해요. 상처받은 치유자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도울 수 없어요."

서린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많네요..."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왜요?"

"이미 시작했으니까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7.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린이는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방향이 보였다.

그날 밤, 서린이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년 계획:

대학 진학: 심리학과 지원 HSP와 감정에 대해 학문적으로 배우기


독학: 온라인 코딩 강의 듣기 (Python 부터) 스타트업 관련 책 읽기 디지털 헬스케어 트렌드 공부하기


경험: 이솔 선생님 워크숍 보조강사로 일하기 (제안해보기) HSP 커뮤니티 찾아서 참여하기 감정 일기 매일 쓰기 (내 데이터가 곧 연구 자료)


네트워크: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만나기 멘토 찾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하기


자기 치유: 명상 매일 하기 상담 받기 (필요하다면) 건강한 경계 설정 연습하기"


계획을 적고 나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할 수 있어. 한 걸음씩.'

8.

며칠 후, 서린이는 담임선생님을 다시 찾아갔다.

"선생님, 저 심리학과 가고 싶어요."

선생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리학과? 갑자기 왜? 지난번에는 영혼 치유 어쩌고..."

"심리학을 배워야 사람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심리학과는... 취업이 좀..."

서린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취업하려고 대학 가는 게 아니에요. 배우려고 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한참을 서린이를 바라보았다.

"너... 달라졌구나."

"네?"

"예전에는 눈빛이 흔들렸는데, 지금은 확고해. 뭔가 결심한 것 같아."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네. 제가 왜 태어났는지 알 것 같아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열심히 해봐. 심리학과 입시 준비하자."

9.

그날 저녁, 서린이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코딩...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검색했다.

"초보자를 위한 Python 강의"

수많은 결과가 나왔다.

하나를 클릭했다.

강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부터 Python을 배워볼 건데요..."

서린이는 집중해서 들었다.

처음에는 외계어 같았다.

변수, 함수, 루프...

하지만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코딩이라는 게 결국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거구나.'

첫 번째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python



print("안녕, 세상아. 나는 서린이야.")


실행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나타났다.

"안녕, 세상아. 나는 서린이야."

서린이는 감동했다.

'내가... 컴퓨터랑 대화했어!'

작은 시작이었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10.

시간이 흘렀다.

서린이는 매일 조금씩 배웠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고, 한 시간은 코딩 강의, 한 시간은 심리학 책, 한 시간은 명상과 감정 일기.

주말에는 이솔 선생님 워크숍에 보조강사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그냥 자리 세팅하고, 차 준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역할이 늘어났다.

참가자들과 대화하고, 명상을 리드하고,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돕고.

그 과정에서 서린이는 배웠다.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다양한지. 하지만 본질은 모두 같다는 것.

"나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

그게 모든 고통의 뿌리였다.

어떤 사람은 외모로, 어떤 사람은 성격으로, 어떤 사람은 성공으로, 증명하려 했다.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하지만 증명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사랑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니까.

서린이는 깨달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결국 이거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돕는 것.'

11.

어느 날, 워크숍 후에 한 참가자가 다가왔다.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저기... 질문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이솔 선생님이 사용하는 '감정의 정원' 은유 있잖아요. 그게 앱으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일 내 정원을 볼 수 있고, 감정을 꽃으로 표현하고..."

서린이의 심장이 뛰었다.

"저도요!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여성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혹시 개발할 수 있어요?"

"아직은 배우는 중이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저 UX 디자이너거든요. 혹시 나중에 정말로 만들게 되면, 도와줄 수 있어요."

서린이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요?"

"네. 명함 드릴게요."

김하늘 - UX/UI Designer

"전화 주세요. 진심이에요."

그 순간, 서린이는 느꼈다.

'시작되고 있어. 내 꿈이.'

12.

그날 밤, 서린이는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연히 만난 디자이너.

하지만 우연일까?

'무의식이 연결해준 거야.'

시계를 보니 11시 11분.

"또 너구나."

서린이는 일어나 노트를 펼쳤다.

"오늘 깨달은 것:

내가 혼자 모든 걸 할 필요는 없다.


내 꿈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무의식은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준다.


나는 그저 선명하게 꿈꾸고, 한 걸음씩 가면 된다.


하늘씨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이건 신호다. '이제 준비하라'는.

해야 할 것:

코딩 더 열심히 배우기


앱 기획안 구체화하기


HSP 데이터 조사하기


언젠가 하늘씨에게 연락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하기"


적고 나니, 길이 보였다.

먼 길이지만, 보였다.

13.

수능이 다가왔다.

주변 아이들은 극도로 긴장했다.

인생이 결정되는 시험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린이는 달랐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끝이 아니라.'

시험을 봤다.

긴장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집착하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중위권.

서울의 유명 대학은 어렵지만, 지방 국립대 심리학과는 가능한 성적.

어머니가 아쉬워했다.

"조금만 더 잘 봤으면 서울에..."

"괜찮아요, 엄마. 어디서 배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배우느냐가 중요해요."

아버지는 무관심했다.

"네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

축복도 저주도 아닌, 무관심.

어쩌면 그게 서린이에게는 최선이었다.

간섭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으니까.

14.

입시 원서를 넣었다.

지방 국립대 심리학과.

그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서린이는 멈추지 않았다.

Python을 계속 배웠다.

이제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감정 일기 기록 프로그램.




python



emotion_diary = {} def add_emotion(date, emotion, intensity): if date not in emotion_diary: emotion_diary[date] = [] emotion_diary[date].append({ 'emotion': emotion, 'intensity': intensity }) def show_pattern(): for date, emotions in emotion_diary.items(): print(f"{date}: {emotions}")


투박했지만, 작동했다.

'언젠가 이게 진짜 앱이 되겠지.'

그리고 심리학 책도 읽었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내향적인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감정의 발견』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상한 게 아니었어. 나는 HSP였어. 그리고 HSP는 독특한 선물을 가진 사람들이야.'

15.

합격 발표 날.

서린이는 침착하게 컴퓨터를 켰다.

입학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화면에 떴다.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우주."

어머니에게 알렸다.

"엄마, 붙었어."

"어머, 정말? 축하해!"

어머니는 기뻐했다.

하지만 서린이만큼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대학은 '목표'였지만, 서린이에게는 '과정'이었으니까.

진짜 목표는 훨씬 더 컸다.

그날 밤, 서린이는 정원 명상을 했다.

파란 장미는 이제 꽤 크게 자라 있었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곧 필 것 같았다.

"곧이야, 그렇지?"

"응. 곧이야."

"무서워."

"당연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니까."

"잘할 수 있을까?"

"넌 이미 잘하고 있어. 매일, 조금씩."

서린이는 파란 장미를 바라보았다.

"우리 함께 피어나자."

"응. 함께."

16.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서린이는 혼자 교정을 걸었다.

3년 동안 외로웠던 곳.

하지만 이제는 그리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이 있었으니까.

고독을 견디는 법.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 무의식의 신호를 듣는 법.

"고마워."

학교에게 인사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울타리에 앉았다.

"까악—"

"너도 작별 인사하러 왔어?"

서린이는 웃었다.

"고마워, 그동안 지켜줘서. 대학에서도 가끔 놀러 와."

까마귀는 날개를 한 번 펼쳤다.

그리고 날아갔다.

하늘 높이.

서린이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도 곧 날아오를 거야."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이솔 선생님이었다.

"서린아, 축하해! 졸업했지?"

"네, 선생님."

"대학 가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있어?"

"음... 왜요?"

"내가 아는 명상 센터에서 인턴을 찾고 있거든. 3개월 정도. 숙식 제공하고, 명상 깊이 배울 수 있어. 관심 있어?"

서린이의 심장이 뛰었다.

"정말요?"

"응.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어디에 있는데요?"

"제주도."

서린이는 숨을 들이켰다.

제주도.

바다.

자연.

새로운 시작.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내가 연결해줄게."

전화를 끊고, 서린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하트 모양이었다.

"또 신호네."

웃음이 났다.

'내 인생은 정말... 신비하게 흘러가고 있어.'

17.

2주 후.

서린이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생애 처음 혼자 하는 여행.

창밖으로 구름이 흘러갔다.

땅이 점점 작아졌다.

'나는 지금 날고 있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명상 센터에서 나온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린이죠? 저는 민호예요. 센터 매니저."

"안녕하세요."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갔다.

바다가 보이는 산속.

작은 한옥 건물들.

"여기예요. 고요의 숲 명상 센터."

서린이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기가 달랐다.

깨끗하고, 평화롭고, 살아있었다.

"방 안내해줄게요."

작은 한옥방.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였다.

"여기서 3개월 동안 지내실 거예요. 하루 일과는 내일 설명드릴게요. 오늘은 쉬세요."

민호가 나갔다.

서린이는 혼자 방에 앉았다.

고요했다.

평생 처음으로, 진짜 고요를 느꼈다.

도시의 소음도 없고, 사람들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자연만.

눈물이 났다.

"나... 집에 온 것 같아."

18.

다음 날 아침.

새벽 5시에 종이 울렸다.

서린이는 일어나 명상홀로 향했다.

이미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모두 조용히 앉아 호흡하고 있었다.

서린이도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호흡에 집중했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종이 다시 울렸다.

한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하지만 5분처럼 느껴졌다.

아침 식사.

조용히, 말없이.

각자 자기 음식에 집중하며.

'이게 진짜 식사구나.'

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쌀의 단맛, 김치의 매콤함, 된장의 깊은 맛.

오전에는 노작.

정원 가꾸기, 청소, 요리 돕기.

서린이는 정원을 맡았다.

실제로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일.

'내 내면의 정원만 가꿨는데, 진짜 정원도 가꾸네.'

오후에는 명상 수업.

센터 선생님이 가르쳤다.

"명상은 비우는 게 아닙니다. 채우는 거예요."

"뭘 채우는데요?"

한 참가자가 물었다.

"의식을. 자각을. 깨어있음을."

"어떻게요?"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 거예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서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항상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불안에 있었어. 지금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었어.'

저녁 식사 후.

자유 시간.

서린이는 바닷가로 걸어갔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밀려왔다, 밀려갔다.

영원히 반복되는 리듬.

서린이는 모래에 앉았다.

"파도야, 너는 지치지 않니?"

파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밀려왔다.

'지치는 게 아니구나. 이게 본성이니까.'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그래야 해. 사랑하는 게, 치유하는 게, 내 본성이야. 그러니까 지칠 필요가 없어. 그냥... 흐르면 돼.'

19.

3개월이 흘렀다.

서린이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몸도 건강해졌다.

규칙적인 생활, 건강한 음식, 충분한 수면.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매일 명상하고, 자연과 함께 있으니.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면이었다.

서린이는 이제 자신의 무의식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질문을 던지면, 답이 왔다.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직관으로. 확신으로.

마지막 날.

센터 선생님이 서린이를 불렀다.

"서린아, 잘 지냈니?"

"네, 선생님. 정말 감사했어요."

"뭘 배웠어?"

서린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저 자신을 믿는 법을요."

선생님이 미소 지었다.

"그거 하나면 충분해. 이제 세상으로 나갈 준비됐니?"

"네."

"무섭지 않아?"

"무서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혼자가 아니니까요."

"누가 함께 있는데?"

서린이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제 안에 우주가 있어요. 무의식, 파란 장미, 그리고... 사랑."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봐. 그리고 세상에 네 선물을 줘."

"네."

20.

제주공항.

서린이는 출발 게이트에 서 있었다.

이제 대학으로 갈 시간.

새로운 장이 시작될 시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하늘씨(UX 디자이너)의 명함을 사진으로 찍어놨던 게 보였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곧.'

그리고 노트 앱을 열었다.

"제주에서 배운 것:

고요 속에서 진짜 목소리가 들린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행동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내 본질을 거스르는 삶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제 나는 준비되었다.

대학에서 배우고, 기술을 익히고, 사람들을 만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리고 언젠가, 내 비전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파란 장미는 이제 거의 피어날 준비가 되었다.

조금만 더.

세상아, 기다려. 내가 간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밖으로 제주도가 점점 작아졌다.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제주야. 나를 준비시켜줘서."

그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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