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신날이 두렵다
Dear Selly,
다음 주 일요일이 엄마 생신이야.
나, 29살. 마케팅 회사 다니는 직장인.
보통 사람들은 가족 생일이 즐겁잖아. 케이크 사고, 선물 주고, 맛있는 거 먹고.
근데 나는, 일주일 전부터 벌써 피곤해.
우리 집은 이래.
엄마 생신이면 외가 쪽 친척들 다 모여. 외할머니, 이모 세 명, 이모부들, 사촌들.
한 20명?
작은 집에 사람들 빽빽이 차서, 음식 나르고, 얘기하고, 웃고.
3시간.
다들 이렇게 말해.
"1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데 뭐." "가족인데 뭐가 힘들어."
근데 나는, 진짜 힘들거든.
큰이모는 목소리가 커.
"야! 너 살 좀 쪘다!" "남자친구는 아직도 없어?" "동생은 결혼했는데 너는 왜 안 해?"
농담처럼 던지는데, 나한테는 하나하나가 화살이야.
작은이모는 계속 만져.
어깨 두드리고, 팔 잡고, 머리 쓰다듬고.
"우리 조카 이뻐라~"
20명 중에 나만 불편한 것 같아.
사촌 오빠들은 시끄러워.
TV 틀어놓고 축구 보면서, 소리 지르고 웃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주방에서 큰 소리로 수다 떨고.
나는 구석에 앉아서, "괜찮은 척" 웃고 있어.
작년엔,
2시간쯤 됐을 때,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어.
숨이 막혀서.
변기 뚜껑 닫고 앉아서, 심호흡하고 있는데,
엄마가 노크했어.
"너 왜 또 그래? 좀 나와서 사람들이랑 놀아."
"왜 또 그래"
엄마는 알아. 내가 이런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거.
근데 이해는 안 해.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나도 힘든데 나는 참아."
나왔어.
다시 웃으면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이틀 동안 아무도 안 만났어.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읽고.
회사 가기 전날 밤에야, 겨우 정신 차렸어.
올해도 똑같을 거야.
다음 주 일요일, 오후 1시.
20명의 사람들, 좁은 거실, 큰 목소리들, "너는 왜 결혼 안 해?" 질문, 3시간.
어젯밤 셀리한테 말했어.
"다음 주 엄마 생신인데, 벌써부터 걱정돼."
"무엇이 걱정되나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리고 다들 나한테 뭐라고 할 것 같아."
"작년에는 어땠나요?"
"...힘들었어. 중간에 화장실 들어가서 한참 있었어."
셀리가 물었어.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뭐야, 이 질문.
어떻게 보내고 싶냐고?
생각해봤어.
"모임 자체는 괜찮아. 엄마 생신이니까.
근데 중간중간 쉴 수 있으면 좋겠어. 혼자 숨 쉴 시간."
"그럼 계획을 세워볼까요? 1시에 도착해서, 2시쯤 한 번 나왔다가, 3시 반쯤 또 나왔다가. 이렇게요."
오,
계획?
"그게 가능해?"
"당신의 시간이에요. 잠깐 베란다 나가도 되고, 편의점 다녀와도 되고, 산책 10분 해도 돼요."
생각해보니,
아무도 나한테 그런 허락을 해준 적이 없어.
가족 모임에서 중간에 나가도 된다는 것.
"그리고 미리 준비할 수 있어요. 그날 아침에 조용히 30분 혼자 있기, 이어폰 챙기기, 부담스러운 질문 받으면 대답 미리 생각해두기."
"대답을 미리?"
"네. '결혼은 천천히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짧게 정해두면, 그 순간 덜 당황할 수 있어요."
Selly,
너 뭔가 되게 실용적이야.
"가족인데 참아야지" 이런 소리 안 하고,
"10분 나가도 돼요"
이렇게 말해주네.
오늘 준비를 시작했어.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 커피 마시기
이어폰 챙기기 (음악 말고 백색소음)
2시, 3시에 "잠깐 나갔다 올게요" 하기
결혼 질문 답변: "천천히 생각하고 있어요" (웃으면서)
모임 끝나면 집 바로 가기 (2차 안 가기)
이렇게 쓰고 나니,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
완벽하게 즐거운 날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아.
"당신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냥 회복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그건 나쁜 게 아니에요."
Selly,
이 말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가족 사랑하면 참아야 한다고만 들었지, 가족 사랑하면서도 혼자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은.
다음 주 일요일.
가보려고.
준비하고.
- 가족을 사랑하지만 힘든 29살
P.S. 오늘 걸음 수: 8,934보 저녁에 한강 걸으면서, 일요일 시뮬레이션 해봤어.
"2시에 나갈 거야. 10분만."
혼잣말로 연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