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 판데믹이라는 이상한 시대
2020년 2월, 갑자기 뉴스에서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은 유럽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진 나라이고, 그때 나는 잠시 네덜란드를 떠나 벨기에의 시골에서 머무르던 중이었다. 사스(SARS)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달 정도 머물기로 한 이 작은 동네에서 조용히 지내다 보면 다 지나가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뉴스는 시시 각각 달라졌고, 몇 주 만에 유럽의 각 국들은 각자의 국경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코로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내게 중국 옆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괜찮은지 자주 안부를 물었다. 물론 걱정은 되지만 나의 가족은 환자 발생 지역이 아닌 곳에 살고 있고,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최선을 다해 대응하는 것 같아서 과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즈음 이탈리아 확진자 소식이 늘어가던 터라, 가끔 스탭들은 누군가가 기침을 하기라도 하면 이런 말을 농담이랍시고 던졌다. "나는 최근에 이탈리아나 차이나타운에 다녀오지 않았으니 괜찮아." 당시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 덕에 유럽에 아시안 포비아와 인종차별이 무차별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그 장소의 유일한 아시안이던 나는 그들의 시덥잖은 농담이 불편했지만 딱히 정색을 하기에도 어려웠다.
유러피안들은 기본적으로 코로나 소식으로 뉴스가 도배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들에겐 몇 천 km 떨어진 남의 대륙 일이었으니까. 겨우 조금 심한 독감 바이러스에 왜 그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It's only flue, why all the fuss?- 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동안 네덜란드에서 겪어온 바로는 그들은 자연주의 치료법을 추구하며, 그것은 적당한 휴식과 그것을 취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효과가 있었다. 뭐랄까, 사람은 특별히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대게의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해야 할까.
가정의(GP)들은 웬만한 질병/고통에는 -그저 따뜻한 차 많이 마시고 파라세타몰(진통제) 먹고 집에서 쉬어라- 정도가 매뉴얼 같은 나라였다. 어디가 낫다거나 선진국/후진국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와 의료 환경이 제공되는 사회 분위기가 달랐다. 유럽에서는 아플 때 기침을 하며 출근하면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감기 기운 정도로 연차를 내면 아마 눈치가 없다고 눈총을 받을 것이다.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당장 증상을 없애는 것이므로 항생제를 복용하고, 유럽에서 아프면=쉰다는 공식은 사회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항생제 없이 집에서 쉴 수 있는 것이다. (논란의 마스크 문제는, 그래서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인정 없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중국이 봉쇄령을 내리고, 한국이 의료 인력과 발달된 온라인 시스템을 갈아 넣으며 코로나 바이러스와 고군분투하는 사이, 유럽의 전반적인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탈리아가 관광과 휴양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겨울이 춥고 매서운 많은 북유럽 국가에서 이탈리아를 휴가차 방문했다는 데에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이탈리아로 전해지고 이탈리아에서 유럽 각국으로 번져나가는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를 그래픽으로 살펴보며, 지구촌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3월이 되자, 하루하루 촌각을 다투는 뉴스들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어느 나라가 뚫렸고, 어느 나라도 국경을 닫는다더라. 카더라의 소문은 다음날 총리의 담화문이나 정부의 권고사항으로 결정되어 전해졌다. 시골의 조용한 마을에 가만히 몇 주 기다리면 상황이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기대는 무너졌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레지던트들은 주어진 예정보다 빨리 귀국길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국경이 닫히면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혹시나 혹은 설마 했던 일들은 매일매일 다른 안내문의 형태로 전해졌다. 어제까지 되던 일들이 갑자기 내일부터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밤 각자의 숙소에서 뉴스를 귀 기울여 듣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모여 앉아 각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래도 여기에 모여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착각은, 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인해 무너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지, 갑자기 마른기침과 두통, 약한 설사 증상 등이 나타나서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혹시 모를 가능성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까. 매일 아침저녁으로 발열체크를 했지만 열이 없자 사람들은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었지만, 캐빈에서 혼자 지내야 했던 시간들은 매일 지옥을 오갔다. 처음 증상을 보이던 날부터 약 2주 정도가 지날 때까지, 미세한 불편감과 증상들은 계속되다 사라졌다. 그 시간을 내내 이렇게 별일 없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라도 오면 어쩌지? 같은 걱정으로 채웠다. 네덜란드 보험으로 이 상황도 처리가 될까? 제일 먼저 그 생각을 했다. 나도 코로나는 처음이라서, 젊은 사람들은 괜찮다더라와 게 중에 어떤 사람들은 폐에 문제가 생기고 심각했다더라 사이를 자꾸 오갔다.
이르게 네덜란드로 돌아온 나는, 어쩌면 예민한 기분이나 스트레스 탓일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가정의(GP)를 찾아갔다. 늘 그렇듯이 의사는 나의 증상을 소상히 들어주었지만, 현재 열이 38도 이상으로 지속되거나 고령자/위험군이 아니므로 코로나 테스트를 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냥 집에서 격리하면서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증세를 살피며 쉬다가, 혹시나 위급한 호흡곤란이 생기면 그때 전화하라고. 매일매일 호흡곤란이 일어나는 꿈을 꿨다. 한국에 가는 비행기는 2000유로를 넘어서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증상이 코로나였는지 아닌지 모른다.
모두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안에 갇혀버렸다. 소리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기분이다. 태풍의 눈 가운데에 고요히 앉아 있는 느낌. 바깥에 휘몰아치는 태풍이 소리도 모양도 없어 보이지 않지만 곧 무엇인가가 들이닥칠 것만 같다. 어딘가에 동아줄이 있다면 잡고 싶다. 아마도 그런 것 따위 존재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지, 마음의 시름이 깊어지는 날들이었다.
*이 코로나가 앞으로 2년 이상 전 세계를 마비시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
*2022년 브런치 북 발간시점에 추가한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