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

2020.04. feat.스파클링와인(프로세코)

by 틂씨





코로나로 온 나라가 봉쇄(lockdown) 상황인 시점에서 이사는 쉽지 않았다. 나라 전체의 모든 상점이 (수퍼마켓을 제외하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전 집 주인이 렌트를 주던 집을 팔아서 새 집 주인이 그 집을 레노베이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다른 수가 없었다. 당장 급하게 집을 구하다 보니 맞는 조건을 쉽사리 찾기 어려워서, 우선 친구의 친구 집에 단기간 머물기로 했다.


이케아의 카탈로그스러운 집이었다. 예쁘게 잘 꾸며져 있는데, 어쩐지 진짜 사람이 살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의 집. 하우스메이트 R은 스스로 OCD(강박)가 좀 있는 편이라고 고백했다. 어쩐지. 그런데, 나도 그런 면이 좀 있으니 우리는 괜찮지않을까. 더러운 것 보다야 낫겠지.


그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거의 매일 어딘가를 청소하는데, 각종 도구와 약품이 꽤나 전문적이다. 요즘처럼 꽃가루가 날리는 봄에는 매일 바닥을 아침저녁으로 닦는다. 온도계와 습도계를 놓고 생활에 이상적인 온도와 습도라는 20°, 40-60% 정도로 실내 환경을 강박적으로 맞춘다. 거실에 있는 아주 작은 선인장부터 커다란 열대 식물의 화분까지(거의 100개) 자주 물을 주고 잎을 쓸고 닦는 바람에 먼지 한 톨 없는데도 자꾸 식물에 진드기가 생긴다며 엄마 원숭이처럼 식물의 잎을 뒤집어 확인한다. (어, 내 생각엔 집이 너무 습도가 높아서 그런 것 같은데... 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



코로나 초기의 강도높은 락다운 3개월간 우리는 내내 집안에 갖혀서 자주 창밖만 내다보며 지냈다.




평소 네덜란드 날씨 vs. 사회적 거리두기/격리 시즌의 네덜란드 날씨



네덜란드는 요즘 매일 건조하고 화창한 봄 날씨를 갱신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밈이 떠돌아다닌다. 원래 봄에는 거의 매일 비가 와야 정상인데, 전 국민이 격리 중인 지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 벌써 3월 말부터 이상기온으로 맑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원래 평소 햇빛을 보기 어려운 북유럽의 특성상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편인데, 오랜 격리에 지친 사람들이 정부에서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쳐도 다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외출을 시도한다. 결국 지난 주말에 많은 기차가 멈춰 섰다.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1.5m 거리두기가 수행이 안돼서. 이 나라는 4월 말까지 락다운이 예정되어 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아마 격리 유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기온이 20도가 넘어가고 햇빛이 쨍한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한껏 여름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게다가 하우스메이트는 스스로의 강박에 못이겨서인지 매일같이 레드 와인을 한 잔씩 마신다. 너 이정도면 알코홀릭 아니냐며 반쯤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건네면, 와인 한 잔정도는 괜찮다고 우긴다. 자기는 긴장도가 높아서 이렇게라도 릴렉스 시켜줘야 한다며. 그걸 저녁마다 보고있자니 나도 와인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마트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사왔다. 여름엔 톡톡 터지는 스파클링 와인이지! 그중에 내 최애는 프로세코(Prosecco)라 불리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이다. 산뜻하고 깔끔한 맛이 좋아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주로 마시는데 프로세코가 특히 가성비도 좋고, 여름스러운 청명한 기운을 준다. 우리는 어느새 저녁마다 각자의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창밖의 길거리를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여름엔 스파클링 와인



실은 나는 술과는 연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부모님에 이어 유전자에 알코올 분해 요소가 없는 채로 태어났다. 와인 한잔은 하루 맥시멈 주량이다. 그런데 프로세코 한 잔으로 잠깐이나마 심신이 릴렉스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사실 요즈음엔 당장 내일도, 다음 달도, 어떻게 될 지를 알 수 없어 마음이 불안하다. 그걸 매일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알 수 없는 미래는 어쩌면 공포에 가까운 느낌 아닐까. 그렇지만 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려고 한다. 뭔가를 걱정한다고 바꾸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크게 숨 한번 내 쉬고 지나간 오늘 대신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는 편이 이로울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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