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은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의 탄생 04.] feat. <세자매>

by 틂씨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세자매>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좋았다.


여러 가지의 생략과 선택과 집중이 있었고, 그래서 언뜻 과장스럽게 느껴진 설정도 영화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세 자매의 캐릭터가 끌고 가는 영화다. 그들의 선명한 캐릭터를 위해 다른 개연성들은 약간 무심하게 채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의 각자의 결핍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두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카메라가 비출 때, 관객은 이 영화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각자의 처지와 성격과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발현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어른들은 어째서 사과하지 않는가. 그중에서도 특히, 사과하는 가부장을 본 적이 없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폐해는 성별을 따르기도 하지만, 연령을 따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는 힘이 없다. 어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 예의이고 문화라고 배운다. 가정의 일은 국가나 사회가 들여다보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면,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런 가정폭력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해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절을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왜 우리는 '원래 그러니까'를 이기지 못하고, 대면하지 못하고, 싸워보지 못하고, 수긍하며 살아가고 있나. 특히 한국에서, 자식을 독립된/자신과 다른 인격체로 인정하는 부모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러니 버릇없이 키우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어째서 어른과 남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가부장들은 사과하지 않는가. 사과하면 그들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건 폭력적이다.


반대로 약자로 대변되는 성별과 연령을 가진, 여성과 자식의 교집합으로 이루어진 '딸'이라는 존재는, 자주 가족 내에서 인내와 희생으로 귀결된다.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이루어져도, 가해자가 잡혀가면 돈을 벌 사람이 없어서 경찰에 탄원을 해야 하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있다. 폭력은 거의 대게, 파워 게임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곳을 알아차린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그래도 괜찮았으니까, 그래도 괜찮을 거라서 그렇게 한다. 잘못한 것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어.' 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무척 익숙하게 들렸다.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더 맞더라도, 집안 공기가 나 때문에 더 나빠지더라도, 잘못하지 않은 것에 잘못을 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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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럴듯한 삶에 그럭저럭 순응한 채로 사는 것처럼 보였던 둘째 미연이 외쳤다.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시라고요!

아비는 결국 사과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와 다르지 않다. 물론 사과한다고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겠지.




이런 영화는 좋다는 평을 들어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보면서 힘들 걸 아니까. 그래서 용기씩이나 내어서 봐야 한다. 그러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세 배우 모두 훌륭하지만, 나는 <여배우는 오늘도, 2017>를 보고 나서부터 문소리 배우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대학원 졸업 작품이라는 그 영화에서 그녀는, 표현하는 배우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감독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의 현실을 정말 잘 구현해냈다. <세자매>에서도 문소리는 어떤 면에서는 자신과 닿아있는 미연의 역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후, 문소리 배우는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우리의 딸들이 폭력과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 당당하고 웃으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영화다."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나는 왜인지 몰라도 진짜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법 한 리얼리티가 담긴 영화들에 정이 간다. 이승원 감독은 가족 간에 진정한 사과가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사과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 같으니까. 특히 가족에게는 더.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어른은 어린이를, 남성은 여성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간의 평등성을, 한국의 가부장제는 언제쯤 인정할 수 있을까. 사실은 그 길이 요원해서, 이 영화가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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