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의 탄생 11.] 나를 닮은 너에게
언젠가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매번 뛰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버스정류장부터 아파트 단지까지 가로지르는 재래시장 언덕길 말이야. 열두 시가 넘어가면 온 가게들이 모두 불이 꺼져서 어둑해진 시장이 무섭다며. 그래서 정류장에 내리면 숨을 고르고, 가방끈을 고쳐 매고, 그 언덕길을 따라 뛴다고 했지. 겨우 5분 남짓한 그 거리가 밤이면 그렇게 길게 느껴진다고 했잖아. 바로 옆에는 네가 나온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줄줄이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의 재래시장이 뭐가 무섭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끔 오래된 떡볶이집 하나가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느라 불을 훤히 밝혀두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아마도 그 길에서 성도착자를 마주치고 나서부터였을까. 그 후로 뛸 때면, 이상하게 다짐을 하게 된다고 했잖아. 이까짓 거리도 끝까지 뛰지 못하면 앞으로 나는 아무것도 못 해낼지도 몰라, 그러니까 멈추지 말고 끝까지 뛰어야 해. 그 길을 뛸 자신이 없는 날은 더 먼 큰길 쪽으로 돌아 집으로 가곤 했다고 했지.
그러고 보면, 경기도로 향하던 빨간색의 광역버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어. 거긴 정말 치열한 세계잖아. 처음 탔을 때 앉지 못하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서서 가야 하니까. 강남대로변에는 늘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지. 그날도 꽉 찬 버스에 올라타 마지막 남은 복도 쪽 좌석에 겨우 몸을 구겨 넣고 꾸벅꾸벅 졸던 중이었을 거야. 뭔가 이상한 감각에 눈을 떴고. 어떤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은근슬쩍 네 팔에 비비고 있었던가. 사실 자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는 말을 이해해.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겠어. 이미 양 좌석 사이의 복도까지 서 있는 사람들로 꽉 찬,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아무도 내리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네가 뭘 할 수 있었겠니. 아무것도 아닐 거야, 생각하며 한껏 몸을 움츠리는 것 말고는. 너는 그때부터 항상 외출할 때면 커다란 가방을 방패처럼 챙기게 되었지. 하루에 세 시간씩을 공포에 떨며 다닐 수는 없었으니까.
원래 대중교통은 늘 지옥 같다고 했잖아. 네가 가방으로 선을 그으면 불쾌해하던 남자들 말이야. 쩍벌이나 어깨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들. 난 원래 다리를 오므리지 못해, 아니면 내가 덩치가 더 크니까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겠어 하는 말을 행동으로 하는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온 힘을 다해 좌석의 중앙선을 밀어냈지. 한 시간을 내내 어깨로 싸우거나 다리를 밀치는 일이 있어도, 절대 그런 사람들에게는 1mm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 투명한 아크릴 판이 있다면 몸에 두르고 다니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너를 기억해. 그러니 언제나 피곤할 수밖에. 너의 일상은 그런 사소한 싸움들로 얼룩져갔어. 무사한 날도 있었지만, 결국 눈을 부릅뜨고 싸워야 하는 날도 있었지.
그뿐만이 아니잖아. 짧은 치마나 레깅스를 입으면 보여주려고 입은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거나, 대놓고 품평하는 사람들. 성폭력 생존자들이 불쌍해 보이지 않으면 피해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성차별을 이야기하면 요즘은 옛날 같지는 않잖아, 너는 너무 예민해.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 거기서 너는 일상의 싸움을 계속하며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물론, 타국의 삶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알아. 너의 핸드폰 카메라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면 유독 커다랗게 '찰칵!' 소리가 나잖아*. 유럽 사람들은 흘끗 쳐다본다며. 저 동양 여자는 노인도 아닌데 왜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무음 모드 대신 저런 커다란 소리를 내는 걸까, 하고. 실수인 줄 아는 거야. 사실은 한국과 일본의 핸드폰에서만 그런 소리가 강제로 난다는 걸, 그들은 모르니까. 그 이유를 친구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 너는 매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지. 가끔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중에 어떤 걸 겪는 게 더 나은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고 말이야.
고생 많았네. 고생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밖에 없네. 그렇지만 나아질 거야. 한국은 뭐든 빠르게 변하잖아. 우리, 더 많이 알아차리자. 그리고 알려주자. 그건 당신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우리의 연대는 이어져야 한다고.
*2004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할 때 60~68dB(데시벨)의 촬영음이 강제로 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표준안을 내놨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