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스트의 탄생 10.]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뚫고서

by 틂씨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 라는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과연 이런 무거운 단어를 내 정체성 앞에 수식어로 붙여도 될까, 많은 여자들이 고민한다.

공격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억센 여자로 비춰지고 싶지 않아서. 유별난 사람으로 찍히지 않을까 걱정돼서.



하지만 내 안에 꿈틀대던 많은 의문과 불편한 마음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공감하며,

웹툰 <며느라기>를 통해 당연한 사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직면하는 법을 목격하고,

강남역 살인 사건을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 가져왔던 공포가 내 것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웃어주고 애교를 부리고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비난받으면서,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의 고백에 '그래서 꽃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봐'하는 날 선 반응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런 모든 상황은 그저 '여자라서' 겪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동안 이름 지어주지 못했던 차별과 폭력과 고정관념과 사회적 압박에, 이제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동조해주지 않겠다고.




사실 내가 어떤 세계 안에 소속되어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열세 살의 중학생에게, 친구들이 너 페미니스트야? 할 때, 뭐 그렇게 이름까지 붙일 정도로 대단한 뭔가는 아니지만, 단지 남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청순해 보이려고 머리를 기르진 않겠다고 말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제사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 어른들에게 되바라지다고 혼이 날 뿐이어서, 친가 쪽 행사를 모두 보이콧했다. 남성 유학생을 뒷바라지 하는 여성 배우자나 남성 어른을 돌보는 여성 돌봄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분노할 때마다, 니 얘기도 아닌데 뭘 그렇게 별나게 구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변태나 스토커에게 쫓긴 이야기를 경험하는 여성은 너무 많은데, 그들은 그러니까 밤 늦게 다니지 마라는 걱정으로 위장한 차별적 말을 듣는다. '(여자가) 강간 당하지 않게 조심해'가 아니라 '(남자가) 강간 하지 마'가 교육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면, 엄마는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어, 했다. 어느새 나이를 한참이나 먹게 된 엄마가 단숨에 바뀌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매번 책을 추천하고, 글을 전한다. 이제 나의 엄마는, 내게 '나도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답해주게 되었다.


무엇보다 타국 생활이 지속되면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성평등 지수가 높은 유럽에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들 덕분에 쉽게 생각의 환기가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리고 끼니의 부담이 여성/어머니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엄마'가 주로 밥을 해주시기 때문에는 더더욱. 한국말로 하면 그리 맥락이 이상하지 않은 어떤 말들은 영어로 하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된다. 그 말을 직접 내뱉어 보고 나서야, 얼마나 이상한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유럽이나 북미 같은 서구 사회라고 여성의 권위가 남성과 완벽하게 동등하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세계에서는 '모성이나 정,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졌던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주의적인 사회니까. 단체나 대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틈에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닫는 것들이 많았다.






록산 게이의 말처럼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완벽한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무게를 껴안을 자신이 없어서 그 말을 나의 정체성에 얹지 못했다.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있을까 했다. 유별나고 싶지 않았다. 모난 돌은 정을 맞는 사회니까. 2016년 이전의 한국에서의 페미니스트란 무슨 여성 과격 선동 주의자처럼 취급되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관련된 목소리가 확연히 늘어났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국답게 모든 것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드러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바라는 것은, 어떤 누군가도 성별로 차별받거나 다른 취급을 받지 않고 모두가 더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나 자신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는 어떤 특별한 계기로 짠 하고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와 성차별 아래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내게 늘 불편하고, 불쾌한 자극을 끊임없이 주고 있었고, 나는 그 존재를 뭐라고 규정지어야 할지 몰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다. 오랜 시간 가부장제를 겪어오면서 했던 생각들과 미디어에서 생산된 많은 잘못된 편견에 더 이상은 고개를 끄덕여주기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했다.

어떤 완벽하지 않은 페미니스트 한 명은 그렇게 서서히 탄생했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으므로.


뒤늦게 태어난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앞으로도 더 읽고 쓰고 말하면서 자랄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생겨난 페미니스트의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고 서포트할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길을 가야 하니까.





[페미니스트의 탄생]이라는 브런치 북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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