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댄서가 될 수 있을까요

Happy New Year, 2026

by 틂씨





눈이 온 나라를 소복이 뒤덮었습니다. 평등하게 모든 것이 흰색으로 뒤덮인 거리는 고요하게 느껴져요.

한국 이야기는 아니고요, 제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 이야기입니다.


원래 겨울엔 늘 비가 많이 오지 눈을 자주 볼 수 있는 날씨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은 신이 났어요.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멈췄습니다. 물(또는 비)을 다루는 데에는 도가 튼 더치들이지만, 눈은 기껏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그것도 축축하게 젖은 눈이라 지면에 닿으면 금세 녹아버리는 정도가 전부였거든요. 거의 일주일째, 연이은 항공과 교통의 마비로 온 나라가 비상 상황을 맞이했어요. 한국 같으면 아침에 눈 뜨면 벌써 도로가 제설되었을 텐데 말이죠. 그 와중에도 꿋꿋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시, 더치는 자전거와 함께 태어난다, 는 농담이 존재하는 나라 답습니다. 저는 그냥 속으로 생각해요, 진짜, 징하다, 하고.


눈을 보기 힘든 이유는, 겨울의 온도가 한국만큼 영하로 자주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춥다고 해봐야 영상 5도 안 팎을 넘나드는 정도라, 젖은 날씨에 늘 으슬으슬하게 춥긴 하지만 온도 자체가 낮은 건 아니거든요. 서쪽의 바다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우비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날씨지만, 패딩은 없어도 괜찮은 날들이 많았는데, 저는 드디어 올 겨울 처음으로 패딩을 샀습니다. 날씨가 유독 더 추워졌거든요. 게다가 늘 꺼내 입던 오버사이즈의 울 코트는 왜 이리 거추장스럽고 무겁게 느껴지던지. 몸이 견디질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볍고 산뜻한 덕다운 숏패딩을 사고 말았습니다. 포근하고 좋던데요? 문득 예전에 외할머니가 살아 계시던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가 어른들 옷은 모양을 따지기보단 가벼워야 한다고 하면서 할머니의 패딩을 고르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나이가 들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새해가 되면 New Year's Resolution이 뭐냐고 자주 묻는 것 같아요. 일종의 새해 다짐 같은 거랄까요? 보통 운동하기, 자격증 따기,, 같은 것들을 말하겠죠. 저는 올해 아주 소소하지만 쉽지 않은 다짐을 했습니다.


스스로를 친구나 가족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아우, 병-신!' 하고 꼽은 주지 말자. 그렇게까지 자신을 미워하지는 말자. 왜냐면, 나는 너무 자주 그렇게 생각하니까, 습관처럼.


병신이라는 단어에 속한 많은 함의들을 알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도 써서는 안 되는 지양해야 할 단어인 것도 이제는 너무 잘 알죠.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잖아요, 정확하게 저런 톤으로 자신을 탓할 때의 그 기분. 또 내가 뭔가를 저질렀네, 왜 이러냐 진짜, 나라도 나를 호되게 가르쳐야지 하는 그 마음. 그렇게 스스로를 벌주고 나면 다음에라도 덜 그러겠지 싶은 기대감. 내가 누구보다도 빠르게 혼냈으니까 남한테는 덜 혼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눈치보기랄까. 뭐 그런 복잡 다양한 마음들이 섞인 순간들 말입니다. 스스로에게 무척 기준이 높은 제 머릿속의 감독관덕에 저런 순간을 너무 자주 마주합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저를 혼내요. 내가 그러지 말랬지, 왜 그랬어, 하고요. 하지만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스스로를 벌준다고 더 나아지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다정하게 대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요. 그들의 의견을 믿고 싶어도, 제 안의 감독관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는 편이라서. 올해의 제 다짐은, 네, 그렇습니다. 아, 병신,(...)이라고 하지 말랬지. 그러지 말자. 로 문장을 끝맺습니다. 아직은 생각을 아예 멈추는 건 어려워서, 그냥, 그때그때 떠오른 말을 수정해 줍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말들을 뱉을 때 마다요.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잦았는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생각하면서요. 자꾸 인식하다 보면 그래도 줄지 않을까 하고.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하나 더 있어요, 다치지 않고 계속 춤추고 싶습니다.

춤을 추기 시작한 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아무런 경력도 관련도 없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그냥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의 수업을 빠지지 않는 정도를 목표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아무도 모르게 몰래. 어쩐지 춤을 춘다는 건 영 겸연쩍게 느껴지니까요, 하하. 그러다 점점 재미를 느껴서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비밀로만 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게 되었거든요, 제 인생에서. 몸을 움직이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 시간이 이렇게까지 즐거운 일일 줄 몰랐어요. 뭐랄까, 에어로빅이나 줌바를 추러 다닌다는 어머님들의 기쁨을 이해하게 되었달까. 꽤 오랫동안 무기력에 잠식되어 있던 인생에 활기찬 기력을 불어넣어 줘요. 스노우보드를 타거나 여행에 미쳐있던 시절처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눈빛이 다시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제 몸은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니까요, ;) 당분간이라도 몸 어딘가를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계속 춤을 추고 싶어요. 비록 그것이 제 인생의 문제를 고쳐주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확실한 기쁨을 얻으니까요.


그런데 이제와서라도 댄서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당신의 새해의 결심은, 특히 거대하지 않고 성과적이지 않은 일상적인 결심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늦은 새해의 인사를 멀리서 전합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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