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엄마몬의 레벨업
동생과 한참 음악 얘기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갑자기, 난 네가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알아! 하고 말을 잘랐다. 응? 뭔가 음이 높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리거나 읊조리는 노래! 맞지?
하하하하하, 맞네, 내가 그런 노래를 좋아하네. 우리 엄마 똑똑하네.
가을방학이나 줄리아 하트, 이적, 김동률, 우효, 이한철, 김목인, 루시드 폴 같이 극적이지 않은, 어쩌면 단조롭다 할 법한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가창력보다는 가사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 주로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들을 편애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매일 아침 엄마에게 유튜브로 음악을 한 편씩 보냈다. 너무 슬프지도, 그렇다고 쿵쾅대는 음악도 아닌 음악을 보내고 싶었다. 아마 내 취향이 잔뜩 반영된 노래 들이었겠지. 가끔은 엄마 취향의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같은 클래식 음악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 엄마는 그때 얘기를 하는 거였다. 그러네, 엄마가 내 취향을 좀 아는구만!
엄마는 따로 나가 산지 한참인, 게다가 여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큰 딸의 음악 취향을 알아냈다는 것이 무척 뿌듯한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주로 인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지 저렇게 통칭될 줄은 몰랐다. 가만 보면, 우리 엄마는 꽤 영민한 사람이다. (이거, 어른에게 써도 되는 표현일까?) 뭐든 파악도 빠르고 이해도 빠르다. 새로운 문화도 설명만 잘해주면 쉽게 배우신다. 카카오톡과 이모티콘이 그랬고, 아이패드에도 누구보다 빨리 능숙해졌다. 가끔은 나도 모르는 줄임말을 쓰시기도 한다. 집에는 벽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존재했지만, 그에 반해 엄마는 늘 말이 잘 통하는 어른이었다.
그런데, 말은 잘 통하는데, 답답한 면이 있었다. 어디 가서도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는 사람. 자라면서, 나는 내가 엄마를 닮아 이렇게 소심한가 싶어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엄마, 제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 그래도 엄마는 순박한 눈을 하고, 자신은 순발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의 말에 바로 대응하기가 어렵단다. 엄마, 순발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감 때문 아닐까? 엄마는 충분히 똑똑하고 올바른 사람이라서 엄마가 생각하는 건 거의 대부분 맞아.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이상하다 생각되면 바로 말해도 돼. 열심히 설득하곤 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오,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놀랍게도 이제 어디서든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는 기죽지 않고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더라는 것.
-우와아, 엄마, 언제 이렇게 변했어? 울 엄마 이젠 하고 싶은 말 다 할 줄 아네? 엄마, 꼭 진화하는 포켓몬 같아.
-그렇지? 나 진화하고 있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아. 그러니까 딸, 걱정 안 해도 돼.
어느새 환갑이 지나 버린 엄마도 레벨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나도 분발해야지. 엄마, 환갑부터 제2의 인생이래. 엄마가 더 더 더 신나는 인생을 살면 좋겠어.
가랏, 진화하는 포켓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