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도 있나요, 그런 사람?

울면서, 꾸역꾸역 <금쪽같은 내새끼>를 본다.

by 틂씨




[다소 감정적인 글이니, 주의해주세요]



빠짐없이, 육아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본다.


보면 한 번씩은 꼭 울면서도, 꾸역꾸역 챙겨 본다. 우는 순간은 대게,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때.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보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게 중 하나씩은 어릴 적 내 모습 같은 잔상이 있다. 오은영 박사가, 사실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겁이나.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무서워.

불안해.

(그래서,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고 싶어.

그게 안되면 화가 나.

감각이 예민해서 자극이 증폭돼.


어릴 땐 손톱을 물어뜯는 대신, 혀를 빨았다. 감각을 이용해서 긴장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한다.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자주 귀 끝을 만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o54evhcdZYs



하지만 이번 화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오열을 했다.

너무 우리 집 이야기 같아서. 다혈질인 부친이 자식을 대할 줄 몰라서 화를 낸다고? 미안하지만, 핑계다.

일곱 살 아이가 아빠가 무서워서 집이 무섭다는데, 내가 그 아이의 마음을 아니까. 그 아이는 집이 무서운 채로 삼십 년이 넘게 자라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집이 무서워서 집 밖을 떠도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글 속에서, 책 속에서, 영상의 댓글에서, 어떤 사연의 댓글 속에서.

가부장제와 다혈질이 만나 만들어진 (가정에서만)무소불위의 부친들. 거기에 꼭 술이나 도박, 빚, 여자 문제를 더해야 '나쁜 사람/부모'의 퍼즐이 완성되는 걸까. VCR 1분에도 모든 패널들이 아....... 하고 말을 멈추는데?


옛날엔 다 그랬다고? 사랑받은 적 없고, 줄 줄 몰라서 그런다고? 다 엿 먹으라 그래.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부모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

자식에게 심리적 물질적 안전한 집(=환경, 세상)을 보장해줄 수 없는 누군가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일생을 안전하지 못한 삶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

불안을 감추지 못해서, 불안을 없애려고 온 힘을 다했다.

오래도록 남들도 나처럼 온 힘을 다해서, 불안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줄 알았다.

꼭 칼에 찔려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피가 흘러야, 그 정도는 되어야 폭력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나.



https://brunch.co.kr/@inbetweener/138



나는 평생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큰 소리가 나면 이 아이처럼 귀가 번쩍 뜨이고, 또 싸우나, 또 내 욕을 엄마에게 하나, 그것도 모자라 엄마에게 자식 교육 못 시켰다고 탓을 할까,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잔뜩 움츠려 든 채로.



그대로 두면, 당신의 일곱 살짜리 딸은, 자라서 나 같은 어른이 될 것이다.

안전하지 못해 불안에 떨고, 불안을 낮춰보려고 손톱을 물어뜯고,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눈치를 보고, 당신의 불호령 앞에 어쩔 줄을 몰라 얼음이 되는. 그러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래도 당신은 뭘 잘했다고 우냐며 소리를 지르거나 왜 버릇없이 대답을 안 하느냐고 다그치겠지.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면서. 쟤는 왜 집안 분위기 안 좋아지게 집에서 늘 표정이 죽상이냐며, 타박하겠지. 그 아이는 자신에게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한 채로, 불안정하고 불안한 어른이 될 것이다. 애착과 사람을 믿지 못하고, 그래서 세상도 믿지 못해서, 발을 땅에 대지 못하고 부유할 것이다.

그게 전부, 당신 탓일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길 바란다.

힘들게 돈 벌어다 줬는데 뭘 더하냐고 큰소리를 칠 예정이거든, 배운 게 없어서 못해준다는 소리를 하려거든,

당신은 자식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



나 같은 아이가 자꾸, 태어나서, 성인이 된다.

근원적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지를 몰라서, 사는 내내 불안장애인지, 우울증인지, 자폐인지, 강박인지, 인격장애인지, 찾아 헤맸다. 알고 싶어서. 고치고 싶어서. 그냥 내가 못되게 태어난 애라서 그런 게 아닐 거라고,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닐 거라고,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예민해진 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서.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 자라는 아이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아이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걸 텐데. 나랑은 다를 텐데. 이제는 괜찮아질 텐데.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너는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줄 수가 없어서. 미래의 너는 여전히 괜찮지 않다고 말해줄 자신이 없어서.



오늘도 엄마의 지난 사랑을 곱씹는다. 그게 내가 가졌던, 붙들 수 있는 전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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